반항과 창조의 브로맨스, 에밀 졸라와 폴 세잔 | 박홍규 | 틈새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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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끄러운 이야기를 전시하게 되는 꼴이지만, 사실 나는 폴 세잔과 에밀 졸라, 각자 이름만 들어봤지 둘에 대해 잘 모른다. 연결성 또한 잘 모른다. 그런 연유로 서평단 모집에 망설였지만,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도 이 책을 받아볼 수 있게 되어서,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음을 미리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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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와 폴 세잔, 이 둘에 대해 지식이 0에 수렴하는 나 역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책. 그들의 작품에 대한 설명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또 작품도 작품이지만 둘의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나 프랑스사에 대한 이야기 역시 적지 않게 다뤄주므로, 읽다 보면 하이퍼링크처럼 또 여러 분야를 탐구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만약 이 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더라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데, 박홍규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들의 브로맨스는 이미 그들이 살았을 때부터 유명했고, 한국에도 일찍부터 전해졌으나, 세잔의 전기나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그리고 인터넷, 국내외 각종 기사들을 통해 잘못 전해진 부분이 있다 하고, 이를 바로잡아주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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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에게는 각자 타고난 재능과 개성, 그리고 노력과 함께 평생의 우정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위대한 친구가 위대한 친구를 만든다. 위대한 예술가가 친구를 위대한 예술가로 만든다.
_P.15, 머리말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의 각별한 브로맨스 이야기가 흥미롭다.
졸라는 영화 「박쥐(2009), 박찬욱」의 원작이 되는 「테레즈 라캥」이나 「제르미날」같은 소설을 쓴 소설가로도 유명했지만, 미술비평가로도 신문에 투고했는데, 그는 당시 인정받지 못하고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었던 세잔(과 모네, 르누아르 등의 화가들도)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한 작가가 인정받지 못하던 화가를 글로써 지지한다. 이는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가. 저 사회 속의 수많은 타인, 대중, 문단이나 학계의 사람들이야 어떻든 누군가의 가치를 알아주는, 아, 그래서 브로맨스인가. 세잔만큼 대단한 회화 작품을 만들지는 않지만 나도 가끔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누군가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더라면 하고 입맛을 다시게 된다. 어쩌면 미대, 졸업전시회를 남기고 자퇴하지 않았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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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영원토록 끈끈할 줄 알았던 둘의 우정이 깨어진 계기로 드레퓌스 사건을 말한다. 세잔은 1891년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는데, 개종을 통해 보수 세력에 들어간 세잔과, 그 대립 축의 있는 정부와 군부를 비판하는 진보 세력인 졸라는 더 이상 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큰 사건을 두고 분열된 세잔과 졸라. 영원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이야기에 더욱 여운이 남은 걸까. 모든 순간이 금세 사라지고,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워진다는 어떤 책 속의 문장처럼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 서로를 향한 지지 뒤에 오는 결별의 고요함에 마음이 적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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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지식의 재편집 자라던 류대성 작가님의 인터뷰 말씀이라던가, 그 자체만으로 완벽한 책보다는 한 권을 읽고 나면 다시 또 다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라던 조희봉 작가님의 「전작주의자의 꿈(2003)」 속 문장이 떠오른다. 책을 열자마자 보이는 방대한 자료들의 목록과, 책을 읽으며 보이는, 적절히 배치된 인용문들. 저자는 지금까지 자신의 손을 거쳐온 자료들을 재편집해, 졸라와 세잔 사이의 브로맨스를 풀어내고 있다. 때로는 자료가 아쉬워 저자는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 설명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책 내용에서 이는 아주 미세한 부분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책들에서 인용하며 살을 붙이는 글을 읽다 보면, 전작주의자의 꿈의 문장처럼 그 자료들 역시 호기심이 생기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기존 저서를 반박을 하기 위해 인용하기도 해서 읽기에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가볍게 읽기엔 다소 거리가 먼 책. 에밀 졸라, 폴 세잔 두 인물,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과 함께 프랑스의 역사나 정치적인 이야기까지 함께 아우르며 다루기 때문에 공부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만약 이런, 지식을 광범위하게 다루어주는 책을 찾고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나. 평소 에밀 졸라나 폴 세잔에 흥미가 있었다면 읽어보기를 권장하고 싶은 책.
한편 졸라는 한국에서 그 전기가 번역되거나 저술된 적이 없다. 졸라를 소개한 책도 100쪽 정도의 간단한 입문서가 한 권 있을 뿐이다. 저명한 외국인 작가치고는 참으로 예외적이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졸라가 무시되고 있다.
_P.39, 프롤로그, 왜 이 책을 쓰는가?
라는 박홍규 선생님의 말씀처럼, 명성에 비해 에밀 졸라의 저서를 검색해 보는데 몇 서적은 나오지 않는다. 인용 서적 표기에 있는데 절판된걸까? 이 책을 계기로 다시 재조명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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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 마음속 붙박이별 같은 류대성 작가님을 덕질의 일환으로 탐구하다가 박홍규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 버킷리스트 같은 느낌으로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손에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런 글을 쓰시는구나, 류대성 작가님이랑 결이 뭔가 비슷한 게 느껴지기도 하고 박홍규 선생님 역시 호기심이 생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더 꼼꼼하게 읽게 되었다. 박홍규 선생님에 대해 알고, 가장 읽고 싶은 박홍규 선생님의 책은 이반 일리치 전집, 그중에서도 특히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이지만, 절판된 관계로 틈새의시간 출판사 책으로 먼저 시선을 돌려야겠다.
본 서평은 틈새의시간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세상은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 세잔의 그림에 나오는 모든 사물처럼 굳건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졸라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튼튼히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마지막까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성실하게 살았다.
_P.48, 프롤로그, 왜 이 책을 쓰는가?
나의 죄는 민중의 언어를 모아서 그것을 무척 공들여 만든 거푸집에 붓는 문학적 호기심을 가졌다는 데 있다. 아! 형식, 거기에 대죄가 있다니.(목로상8)
_P.213, 제4장, 졸라의 노동소설과 세잔의 구조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