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절망조차 금지되어 있다 - 키르케고르 아포리즘
쇠렌 키르케고르 지음, 이동용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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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키르케고르를 접하는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깊고 어둡다. 왜 이렇게 어두운가, 책의 17쪽에 '우리 시대'라는 단어를 읽으며, 키르케고르가 살았던 19세기 덴마크 역사까지 찾아 들여다보게 된다.(한 기사를 찾았는데 안데르센(1805~1875)의 생애 대부분은 덴마크 역사상 최악의 시기와 맞물려 있다던 문장이 보인다. 키르케고르는 1813년에 태어나 1855년에 세상을 떠났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던가,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던가,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의 책이 한때 트렌드였던 것이 떠오른다. 취향은 아니라 굳이 읽진 않았지만, 그런 제목들을 보며 이렇게까지 안락함을 주는 책에 정신을 맡겨도 되는 걸까 의문을 품곤 했는데, 키르케고르 아포리즘의 앞 부분을 읽으며 떡볶이 생각이 자꾸만 난다.


'사람이 우울해지는 것은 오로지 자기책임(P.29)'이라고 일갈하는 철학자, 어떤데.



키르케고르는 우리에게 절망을 들이민다.
피하지 말고, 똑바로 보라고.


그래서 키르케고르의 문장들은 나의 절망의 순간들을 반추해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꽤 많이 절망했었고, 한때는 죽음을 선택하기까지에 이르렀었다. 그 정도로 악바리는 없어서 결국 어찌어찌 살고 있지만, 그 당시에 너무 싫었던 절망적인 내 인생이 지금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 그래서 더 와닿는다. 기쁨의 역치가 낮아서 사소한 일에도 기쁘다고 말해왔는데, 어쩌면 절망을 여러 번 알아버려서 그런 걸까.





하지만 제발 좀 눈을 뜨고 보라. 그대를 지배하는 모든 것들은 우연히 왔을 뿐이다.
_P.15

비극적인 것 속에는 비애도 있지만, 동시에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될 치유의 힘도 있다.
_P.77


새로운 시작을 위해 잠시 빛이 사라진다며 영화 기법인 페이드인과 페이드아웃을 말하던 책이 떠오른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고, 어둠이 있다면 빛도 있다. 부정이 있어야 긍정이 있다. 절망이 있다면, 희망도 있다.



원 저작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는 아포리즘


쇠렌 키르케고르에 대한 책들 역시 궁금해 검색해 보게 된다. 놀랍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작년에 유행했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나, 최근 부상하고 있는 프리드리히 니체보다 선택의 폭이 많지 않은 게 아쉽다. (같은 출판사인 세창미디어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2020)과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읽기』(2024)를 출간했긴 했지만...)




이제, 세창이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쇠렌 키르케고르도 유행의 반열에 들 수 있을까? 더 다양한 저서를 접하고 싶다. 철학서적을 좋아하는 한 명의 독자로 키르케고르 역시 대중들의 열렬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싶다.




+
깊은 어둠에서 점점 밝아지듯, 내지 디자인이 뒤로 갈수록 점점 밝아지는 것도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또 하나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본 서평은 세창미디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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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니체 아포리즘 - 365일 니체처럼 지혜롭게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황국영 엮음 / 동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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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독에서 벗어나 여러 책을 탐독하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간다. 늘, 철학 서적에 관심이 있고, 읽긴 하지만 막상 유명한 철학자들의 원 저서는 아직까지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그간 철학이 딱딱하고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계속 박혀있어 그런 걸까. 딱딱하고 무서워 보이는 이름들─아르투아 쇼펜하우어, 프리드리히 니체, 쇠렌 키르케고르 등─에 괜히 압도당해서 그런 걸까.


철학의 진입장벽을 낮추려는 듯한 출판업계의 움직임이 보이는 듯하다. 최근 들어 철학자들의 아포리즘 책이 유행이다. 작년에는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책이 도서관 대출 순위권 안에 들었는데 이에 이어 이번에는 니체의 철학이 주목받고 있다.





이번에 동녘출판사에서 나온 『하루 한 장 니체 아포리즘』은 니체의 주요 저서 다섯 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도덕의 계보학》, 《이 사람을 보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365개의 글들을 추려냈다. 추려낸 니체의 글과 함께 엮고 지은이, 황국영의 해설이 매 글마다 달려있는 부분이 이 책의 큰 특징.





니체의 다소 당황스럽고 사적인 이야기도 소소하게 있긴 했지만, 대체로 우리 삶에서 중요한 잠언들이 많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삶의 태도, 마음가짐 등 역시 배워야 하는 영역인데, 배우지 못해 실수를 저지르고, 홀로 고통받고 그러는 게 아닐까. 철학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인생에서 방황하는 시기가 좀 더 단축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늘 느끼지만, 또 니체의 글에서 혼란과 절망에서 여러 개의 답 중 하나를 익히게 된다.




'하루 한 장'이라는 제목의 표현도 그렇고, 저자가 한국인 시점으로 니체의 글을 해설해 주는 덕에 니체의 진입장벽이 꽤 낮춰준다. 책에서는 니체의 잠언이 비유와 은유가 많고, 짧고 간결해 이해하기 어려운 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 책이야말로 부담 없이 니체를 입문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아포리즘이 원 저서에서 발췌한 글들이기에 자연스레 니체의 책들, 이 책에서 발췌한 5권의 저서들에 호기심이 생긴다. 정말 저자의 말대로 해설 없이 읽으면 어려울지 역시 궁금하고 확인해 보고 싶은 부분이다.





이 아포리즘 책을 시작으로 니체의 책들 역시 빠른 시기 안에 독파할 수 있기를 소소한 목표로 삼고 싶기도 하고, 또, 어느덧 3월이긴 하지만, 초판 1쇄가 1월 5일인 것으로 보아 1년 필사 챌린지 하기 좋은 책으로 나온 듯하다. 필사 역시 취미 중 하나인데 올 한해, 『하루 한 장 니체 아포리즘』 책으로 필사하며 니체의 철학을 오래 사유하고자 한다.





본 서평은 동녘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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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짧고도 사소한 인생 잠언 - 마흔,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처방
정신과 의사 토미 지음, 이선미 옮김 / 리텍콘텐츠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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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些少]하다. 


사전적 정의로 보잘것없이 작거나 적다지만, 이 사소한 것에 쉽게 흔들리고 무너지는 게 사람 마음이 아닐까 싶다.


책이라는 매체도 사실 어찌 보면 사소하다. 한 권의 책. 손에 들고 다닐 수 있고, 만 원에서 이만 원, 조금 비싸면 삼만 원 정도 내면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사소함에 사소함으로 구원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지극히 짧고도 사소한 인생 잠언 | 정신과 의사 토미 | 리텍콘텐츠

마흔,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처방


정신과 의사 토미가 돌아왔다.


지난여름에, 같은 출판사의 『정신과 의사 TOMY가 알려주는 1초 만에 고민이 사라지는 말』이라는 책을 읽고 저자의 저서가 더욱 한국에 많이 소개되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다. 거의 반년 만에 나온 신간이다. 



이번 책 역시, 짧은 글을 엮은 책이라 주제가 많고 다양하다. 한 번, 죽 읽어보며 자신이 자주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페이지가 있다면 따로 표시를 해두고, 그 상황이 찾아올 때마다 읽어보자. 나는 왜 '이럴' 때 '이런' 생각만 들었을까? 내 부정적 생각의 원인들, 특히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저자는 캐치해 처방해 준다. 내가 하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주는 답이 내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해 줄 것이다.



많이 흔들리고 무너지며 살았다. 부정적인 생각이 너무 많았을 때는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아직 마흔은 되지 못해 마흔의 삶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에 많이 치여 생각이 많아진 사람은 책을 통해 임시방편이라도 편안함을 가져가는 것은 어떨까. '마음 치료제', '마음 처방전'이라는 콘셉트에 걸맞은 책이다. 예전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으며 마음에 고요를 얻었던 기억이 있기에 더욱 괜찮게 다가온다.



정말 안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정신과 의사 TOMY가 알려주는 1초 만에 고민이 사라지는 말』와 함께 두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본 서평은 리텍콘텐츠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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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
헤르만 헤세 지음, 유영미 옮김 / 뜨인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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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문학 계간지 Littor릿터, 46호. 


서평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처음 계간지를 한 권 샀다. 잡지는 안 읽을 줄 알았던 내가 그 책을 굳이 구입했던 이유는 커버스토리, 「당신이 모르는 베스트셀러」중 하나인 '나는 어떻게 여덟 권의 책을 쓰고 한 권의 베스트셀러도 만들지 못했는가'라는 금정연 서평가의 기고문 하나 때문이었다.


우리를 우리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은 인터넷이 우리 사회로 들어선 이후로 더욱 많아진 듯하다. 사소한 타인의 댓글 하나부터, 신문의 기사, 잘 팔리는 물건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된 책이 여전히 1쇄에 머무르는 것을 보고, 나는 관심 없는데 모두가 읽는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가끔은 내 가치판단이 흔들리기도 한다.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 | 헤르만 헤세 | 뜨인돌

자기답게 사는 것 외에 

성장하고 진리에 이를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에 그렇게 이끌렸나 보다.


재미있게 봤던 영화나 드라마가 커뮤니티에서는 까이고, 내가 예뻐서 산 옷은 지적당하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버려졌었다. 슬프게도 내 취향을 그렇게나 싫어하는 사람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기에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지금까지 아주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게 들리는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는 이렇게 사소한 취향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군중'이 되어버린다.


뜨인돌 출판사에서 나온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은 헤세의 시, 에세이, 편지, 짧은 이야기 등의 45편으로 이루어진 한 권의 책으로,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고집'과 '소신' 등, 타인이 아닌 자기 안의 빛, 자신의 영혼을 따라가라는 메시지다.

45편이라 해도 짧은 글이고, 짧다 해도 모든 문장을 전부 옮겨 적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와닿는다. 특히, 내 삶은 늘 충돌과 고독뿐이었기에 더욱 헤세의 글에 동기화가 잘 되는 걸까?



우리는 달라요.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삶이 가능하고, 그런 삶으로 부름을 받은, 언제나 소수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대다수의 대중보다 감각이 더 섬세하고, 사고력이 더 앞서죠. 이런 자질은 우리에게 아주 큰 행복을 가져다줘요. 우리는 더 정확하고, 더 감수성 있게, 더 뉘앙스가 풍부하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죠. 하지만 또한 우리는 고독하고 위태로워요. 우리는 대중이 느끼는 행복을 포기해야 하죠.

_P.15, 개인주의Individualismus


남들과 많이 다른 취향을 가지기도 했고, 고집이 세다는 말도 많이 들어봤다. 어린아이였을 때는 귀엽게 봐주었지만, 그 시기가 지나자 성인 구실을 해야 한다며 자연스레 꺾여버렸다. 그렇기에, 이토록 따뜻한 헤세의 조언을 마주했을 때 드디어 날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너무도 반가웠다.



고집(Eigensinn)이란 무엇일까? Eigen(자신의) + Sinn(감각). 고집은 누군가 자신만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_P.19, 고집Eigensinn


또, 곧잘 부정적 뉘앙스로 쓰이는 '고집'이라는 표현도, 헤세는 고집의 독일어 단어를 풀어쓰며 고집 있음의 가치를 증명해낸다. 한국어 단어의 고집도 굳을 고(固)잡을 집(執)을 쓴다. 부정적 뉘앙스는 지워버리자. 헤세의 조언처럼 우리는 자신의 감각을 찾아 굳게 잡아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 저마다의 인생의 최대 미덕인 것이다.


이 책을 알아보는 이는 나처럼 대중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게 치이며 살다 보니 어쩌다 나의 의지가 꺾여버리게 되고, 나로 살아가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들. 설령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 안의 빛이 강하다면, 개성이라는 그 빛을 되찾기에 늦는 시기란 없으리라.




본 서평은 뜨인돌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자기답게 사는 것 외에 성장하고 진리에 이를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_P.8, 서문Vorwort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사는 게 맞는 것일까?'라고 묻지 말아야 한다. 그런 질문에는 답이 없다. 모든 방식은 나름 맞는 방식이다. 오히려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나다. 나는 이렇게 생겨 먹었다. 내 안에는 이런 필요와 이런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삶을 견디고, 가능한 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_P.9, 서문Vorwort


'인식', 즉 정신의 깨어남이 성서에서 죄로 묘사되는 것처럼, 개인이 군중을 헤치고 나와, 인간이 되고 개성적 존재로 우뚝 서는 것에 도덕과 관습은 늘 불신의 눈초리를 보낸다.

_P.10, 서문Vorwort


고집(Eigensinn)이란 무엇일까? Eigen(자신의) + Sinn(감각). 고집은 누군가 자신만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_P.19, 고집Eigensinn


자기 개성의 비밀은 오직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답니다.

_P.30, 자기 개성Die eigene personlichkeit


젊은 사람들은 비판과 거부에서 힘을 얻기보다는 감정과 이상을 동력으로 살아간다.

_P.114, 세계사Weltgeschichete


외부로부터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는 운명에 굴복당합니다. 화살이 야생동뭉를 쓰러뜨리는 것처럼 운명이 그를 굴복시키지요.

_P.128,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중에서

Was sollen wir tun? Aus >>Zarathustras Widerkehr<<


운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듯 고독 역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운명을 끌어당기는 마법의 돌이 있다면 고독도 우리를 찾아옵니다. 많은 사람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황야로 길을 나섰지만, 예쁜 샘 곁에서 예쁜 은자의 오두막에서 우매한 군중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무수히 밀집한 곳에 서있지만, 별들의 서늘한 공기가 그들의 이마를 두릅니다.

_P.143,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중에서

Was sollen wir tun? Aus >>Zarathustras Widerke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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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미선나무에서 아카시아까지 시가 된 꽃과 나무
김승희 외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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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이루카 엮고 옮김 | 아티초크

미선나무에서 아카시아까지

시가 된 꽃과 나무

 

김승희, 에밀리 디킨슨, 퍼시 버시 셸리, E. E. 커밍스, 페르난두 페소아,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알프레드 테니슨, 월트 휘트먼, 토머스 무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윌리엄 셰익스피어,

백국희, 남궁벽, 김영랑, 이상, 김소월, 이육사, 노자영, 김명순, 오일도, 한용운,

안토니오 마차도, 윌리엄 워즈워스, 아틸라 요제프, 윌리엄 블레이크,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제라르 드 네르발,

폴 베를렌, 폴 로런스 던바, A. E. 하우스먼, 안나 마골린, 캐서린 맨스필드, 베르톨트 브레히트,

엘라 윌러 윌콕스, 랠프 월도 에머슨, 제인 테일러, 윤동주

 

 

 

꽃과 나무. 듣지도, 보지도, 말할 수도 없는 이 생명은 저마다의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모양과 빛깔을 띠며 자란다. 우리는 그런 꽃에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아스팔트를 뚫고 뿌리를 내리는 질긴 생명력에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모든 이들이 식물을 바라보며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론 서로 상반된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시인들은 꽃과 나무를 보며 어떤 것을 느끼고, 시로 승화했을까. 평소 이 의문을 품고 살았던 건 아니지만, 이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교문학을 공부하고 여성과 소수자 문학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번역가 이루카가 김승희부터 요한 볼프강 폰 괴테까지, 37명의 국내외 시인들의 꽃과 나무 시를 이 책 한 권에 엮어냈다.

 

 

 

 

 

 

/

장미가 곱다고

꺾어보니까

꽃포기마다

가시입니다

 

사랑이 좋다고

따라가 보니까

그 사랑 속에는 눈물이 있어요

 

그러나 사람은

모든 사람은

가시의 장미를 꺾지 못해서

그 눈물 사랑을 얻지 못해서

섧다고 섧다고 부르는구려

 

─ 「장미」, 노자영

 

 

 

꽃과 나무는 사랑도, 죽음도, 쓸쓸함이라는 감정도 알지 못한 채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겠지만, 시인들은 그런 꽃들 속에서 이를 읽어낸다. 그리고 그 시들에 경탄하며 읽는 건 내가 마음이 흔들리기 쉬운 '사람'이라 그런 것이겠지.

 

 

대체로 (그런 시들이 많긴 하지만) 꽃에 쓸쓸함이나 사랑을 담아 노래한 시에 눈이 머물게 된다. 내가 그런 상태여서 그런 걸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그저 추하고 쓸쓸한 인간인 채로의 나였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인생을 꽃과 나무의 시로, 예쁜 꽃으로라도 꾸밀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

나는 내 꽃 속에 나 자신을 감춰요

당신의 꽃병에서 나와 시드는데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은

나를 외로운 사람으로 느끼는군요

 

─ 「꽃과 함께」, 에밀리 디킨슨

 

 

 

 

 

 

가장 주고 싶은 책 · 가장 받고 싶은 책에 딱, 걸맞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꽃과 나무라는 공통된 키워드의 시에 맞게 매 페이지마다 그려진 식물 일러스트들이 참 예쁘다. 이 시인들도 식물에게서 아름다움을 보고, 영감을 얻기도 하며 시를 썼는데, 그런 꽃과 나무를 누가 과연 싫다고 마다할 수 있을까. 평소 시를 좋아하던 이에게도 선물하기 좋겠지만, 시를 잘 모르는 이에게라도 주기 좋을 것 같다. 누군가가 이 책으로 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면, 좋아하는 시인이, 호기심이 가는 시인이 생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역시 알고 있던 시인도 있었지만,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 시인도 꽤 있었다. 참 꽃과 나무에 대한 시를 많이 쓴 듯,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자주 보이게 되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라던가, 얼마 전 읽었던 김연수 작가의 단편 「사랑의 단상 2014」가 문득 떠오르는 시 「미선나무에게」를 쓴 김승희 시인이라던가... 또 이 책을 통해 새로 마음에 남기려고 애쓰고 싶어지는 시는 얼마나 많은지, 『자기 신뢰』라는 책을 쓴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시도, 영화 『올드보이(2003)』으로 알게 된 엘라 윌러 윌콕스의 카네이션에 대한 시도... 우리는 구체적인 이유는 잘 알지 못한 채, 관습처럼 꽃에 의미를 담아 선물하는데, "죽지 않는 사랑과 정열이 여기 잠들어 있어"서, 우리는 카네이션을 부모님께, 스승님께 전달하는 걸까.

 

 

 

 

 

 

많은 시인들과 시를 다루다 보니, 책 끝에 시인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그들의 생애는 어땠는지, 그들의 글은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끼친 사람인지, 시를 통해 시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확장될 때 참고하기 좋은 페이지. 엮은 책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본 서평은 아티초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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