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를 음악으로 읽다
구리하라 유이치로 외 지음, 김해용 옮김 / 영인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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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를 음악으로 읽다] 구리하라 유이치로 외 지음 /  김해용 옮김 / 영인미디어 펴냄



무라카미 하루키는 호불호가 확실한 작가라 생각한다. 나는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모호성, 이계를 넘나드는 불확실성, 허를 찌르는 통찰력과 허무함이 끝내 상실로 이어지는 공백이 좋다. 20년 전에 내가 마주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작품은 <양을 둘러싼 모험>이다. 그 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차근차근 그의 대표작을 읽었다. 그때만 해도 그저 놀라기에 바빴다. 확실히 일반적이지 않은 플롯에, 존재의 유무가 확실하지 않은 현상과 인격에 대해 새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서 기억되는 음악은 몇 개가 없다. 


재즈 카페를 운영했고, 재즈를 사랑하고, 비치 보이스와 비틀스의 음악이 레코드를 통해 들리고,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등이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잘 보지 않았다. 작가의 가치관 보다 활자로 대변되는 '나'를 만나는 것에 치중했다. 생소한 음악과 뮤지션들이 페이지를 장식할 때, 작품의 어떤 메타포로 작용하는지의 큰 흐름만 보았을 뿐 세세히 눈여겨보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얘기하지만 그러고 보면 난 이 작가에 대해서, 작품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음악으로 읽다]에 소개된 작품 속의 음악과 더불어 작품을 이제야 세세히 살펴보고 천천히 듣는다. 아무래도 그의 초기 작품부터 다시 읽어야겠다. 재즈와 클래식, 팝과 락이 어떤 작용과 반작용을 하는지. 단절된 세대를 분리하듯 이어진 <1Q84>까지. 


이 책은 집필인 4인이 들여다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 세계이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음악의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문학을 음악으로 이해하는 것. 작품을 알지 못하고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음악적 고찰이다. 

"중심을 문학에서 음악으로 옮겨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보고 다시 읽는 것. 우리가 이 책에서 시도한 것은 간단히 말해 그런 것들이다." (p.7 본문 발췌)

이 책을 보고 난 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다시 보고 싶게 만들었으니 '구리하라 유이치로'의 생각이 적중했다. 


1. JAZZ - 적재적소에 쓰인 부스러기’-무라카미 하루키와 재즈에 대해 (오타니 요시오) 

2. CLASSIC - 우선은 음악다음이 문학?-무라카미 하루키와 클래식의 관계를 탐독하다 (스즈키 아쓰후미)

3. POPS - 공백(空白)과 회로(回路)-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보이는 파퓰러한 음악 (오와다 도시유키)

4. ROCK - 무라카미 하루키적 록 지상주의 (후지이 쓰토무)

5. 80년대 이후의 MUSIC - 80년대 이후 ‘60년대적 가치관을 봉쇄한 것과 록 및 팝이 멈춘 것의 관계에 대해 (구리하라 유이치로)


각 주제에 따라 작품을 파헤쳤고, 장르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음악과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Disk Guide'가 있다. 음악의 배경과 연주자에 따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기에 연주자들의 특성과 생애도 함께 있어 확실히 이해가 쉽다. 워낙 모르는 뮤지션들이 많아서 검색해보고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봤다. 그럼에도 마니아적인 집요함이 부족하여-갑작스레 해당 장르의 음악적 소양이 솟아나는 것은 아니기에 나 같은 독자를 위해서는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코너이다. 


마지막, 집필 3인의 대담집을 보면, 이 책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각자가 느끼는 하루키식의 음악 취향은 무엇인지 토론을 한다. 재즈 부분을 담당한 집필가 '오타니 요시오'는 이 책을 쓰기 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집필 의뢰를 받고 그의 작품을 총망라하여 읽었는데 모든 것이 좋지는 않았다고 전한다.(개인적인 의견이므로 대담 중에 이견이 나오기도 한다.)

작품 속의 음악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은 대담집도 흥미롭다. 다만 곳곳에 보이는 오탈자가 아쉽다.(아래 별도 표기) 


무라카미 하루키는 개인적 음악 취향이기에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신이 좋고 싫어하는 음악을 확실시하고 있다. 그가 파고든 장르는 광범위하지만 모든 음악을 감싸지 않는다. 지독히도 개인적이어서 음악으로만 보라고 하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문학에 적절히 스며들었지만 확실히 그의 작풍은 호불호가 강하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비일상적인 현상을 음악으로 연결하고 이계와 현재를 오가는 모호함을 음악으로 나열한다. 한 작품 안에서도 주제를 달리한 집합이 모여 만들어내는 교집합의 향연이다. 


누군가 나에게 음악적 취향에 대한 물음을 한다. 묻는 이는 내 취향이 이해불가이다. 좋아하는, 마음 가는 음악을 듣는데 어떤 관점이 필요한지 도리어 묻고 싶다. 음악적 취향은 주관적이니 굳이 이해를 바라며 설명하지 않는다. 존중에 기대기보다 지금 느끼는 내 감성이 중요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도 그렇다. 그의 생각이 작품에 뿌리내리고 감성을 두드린다. 허무와 상실이 삶의 의지로 변화되는 이야기에 음악이 끼워져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의도일지 모르겠으나 작품에 흐르는 음악은 활자와 함께 뇌리에 흐른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음악으로 읽다]를 통해 음악으로 문학을 들여다보니 더욱 선명하게 파고든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캘리포니아 걸스',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1Q84>의 '신포니에타'가 떠오른다면, 무수히 많은 음악이 있었지만 그 하나라도 기억한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한 작품 안에 다양한 음악이 등장하니 복잡한 부분도 분명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억을 더듬어가는 작가이며'(p.159 본문 발췌)

요즘 세대와는 괴리감이 있을 수 있으나 난 그의 작품에서 느끼는 강렬함을 버릴 수가 없다. 그의 에세이를 봐야겠다. 음악적 의견을 어필한 에세이를, 삶을 풀어 놓은 인터뷰를, 그의 가치관이 담긴 생각을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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