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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한 달을 살다 ㅣ 낯선 곳에서 살아보기
전혜인 글.사진 / 알비 / 2017년 8월
평점 :



[파리에서 한 달을 살다] / 전혜인 지음 / 알비 펴냄
꿈을 꾼다. 꿈이라는 비현실에서 현실로 들어선 순간, 꿈은 비로소 완성된다. 알싸한 현실에 잠시 텀을 주어 비현실 같은 일상의 여백을 덤으로 얻는다. 결혼과 직장, 여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신과 마주한 파리에서의 한 달을 낮게 읊조린 음성으로 담아낸 [파리에서 한 달을 살다]는 어찌 보면 현실과 비현실의 대척점에 자리하고 있다. 내가 저자와 같은 결심을 하게 된다면 난 어디로 떠나고 싶을까. 현실이라는 발목에 타협하지 않고 일단 비행기 티켓을 발권한다면 "아, 거기" 툭하고 튀어나올 곳이 어디일까.
그 시작점부터 삐긋 되기 일쑤인데 저자는 거리낌 없이 '파리'를 선택했다. "왜 파리야?"라는 질문에 "파리니까" 한 마디로 응수하고 수긍하게 되는 그곳. 마음 어디에도 의아함이 들지 않는 곳이기에 그곳에서 긴 삶을 끌어가며 두 팔을 벌려 파리의 아침을, 파리의 공기를, 파리의 바람을, 파리의 하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리다. 방송작가인 저자이기에 그녀의 문체는 담담하면서도 달달하다. 작게 알알이 나열된 활자를 통해 바라본 파리는 화려함을 벗어나 일상의 소소함을 담고 있다. 그곳에서 삶을 노래하고 사랑을 되새기는 일상에서 시럽을 듬뿍 얹은 짙은 커피 한 잔의 맛이 나기도 하고, 풍부한 빵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하며, 붉은 와인의 쌉쌀한 맛이 남기도 한다.
회한이 남지 않도록 그 순간만큼은 기쁨이기를, 그래서일까 [파리에서 한 달을 살다]에서는 '빠담빠담' 울림이 들린다.
다채롭다. 붉은 표지의 강렬함은 쉬 잊혀지지 않으며, 책이 품고 있는 각각의 색은 보는 내내 즐겁다. 자잘한 꽃무늬의 속지를 비껴가면 유화 물감을 그대로 짜 놓은 팔레트 같다. 굳이 앞에서부터 읽지 않아도 되기에 손 가는 대로 책 중간에 삐죽 내밀고 있는 색지 하나를 열어 그 부분부터 파리를 이해하고 저자의 마음을 담다 보면 그저 그대로 좋다. 정해놓은 '여행'이 아닌 발길 닿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맡긴 '삶'이기에, 굳이 하나부터 열까지 차례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정해놓은 대로 흘러가기보다는 어디로 튈지 모를, 통통 소리를 내며 구르는 작은 공을 닮은 '삶'은 '여행'에 묶어두기엔 너무 많은 변수를 지니고 있다.
선택이다. 주어진 삶을 어떻게 그릴지는 각자의 몫이다. 개인마다의 사정이 있고 삶이 가지는 무게가 다르다. 그렇기에 어느 것이 옳다고 정의할 수 없다. 삶에서 정답을 도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만족도가 달라진다. 저자처럼 한 달이란 긴 시간의 여행에서 본연의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고, 짧은 하루의 여행에서도 만족을 찾듯, 인생의 가치는 저마다 다르다. 그저 한 달의 홀로 여행이 부럽다고 느끼기보단 주어진 삶을 채워가는 마음의 풍요를 느낄 수 있다.
떠난다. 비록 지금은 활자를 통해, 사진을 통해, 저자의 시점을 통해 여행을 하지만 홀연히 툭 "아, 그곳", 어느새 쉼표를 찍듯 티켓팅을 하고 파리의 푸른 하늘을, 거리에 풍기는 풍미로운 바게트를, 어둠을 비추는 에펠탑을, 재즈 선율이 흐르는 카페를 향해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운 이름 하나를 불러보듯 읊조린다. "아, 파리". 그 위로 Tony Bennett의 [Smile]이 덧대어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