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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 내게 왜 여행하느냐 묻는다면
박세열 글.그림.사진 / 수오서재 / 2017년 7월
평점 :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 박세열 글, 그림, 사진 / 수오서재 펴냄
손에 쥔 여운이 제법 오래간다. 이 책이 품은 것은 하늘거리는 흐릿함이려나, 향기를 품은 짙은 내음일까. 눈부심을 뿌린 풍경을, 불빛을 감춘 거리를 떠올릴게 하는 선명함이 몇 겹으로 베어 있을까. 그런 기대에 부풀어 첫 장을 펼쳤다. '여행'이 주는 무게감은 시간이 부여해준 '그리움'이다. 며칠의 여행이 시간을 쫓아 한 달이 되고, 설렘을 찾아 1년이 되고, 텅 빈 마음을 채우며 10년을 지난 온 그리움이다.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는 시간의 간극을 그리움으로 메꾸고 있다. 그렇기에 낯선 도시가 따뜻하게 느껴지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진솔함이 부드럽게 다가온다.
가본 곳이 아닌 살아 본 곳이 주는 무게는 다르다. 삶의 미련을 잠시 제쳐두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그 발걸음이 주는 무게를 느껴본 저자의 담백한 글은 좋은 여행지에 대한 소개나 화려한 도시에 대한 설렘이 아니다. 그 속에 스며든 사람의 이야기다. 첫 장에 느껴지는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나 가장 빛났던 밤 하늘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배낭에 짊어진 것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감사'이다. 펜 하나와 종이 한 장에 담긴 풍경과 순간의 모습은 혼자 여행을 떠난 자유로움과 저자의 숨은 감성을 드러낸다.
툭툭을 타고 찾아간 유적지에서 만난 어린 소녀 "야"의 밝은 미소가 주었던 스스럼없음에 끌려 시간이 흐른 후 자전거로 찾아간 그곳에서 그는, 소녀에서 숙녀가 된 시간의 흐름을 만났다. 솜사탕 하나로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보탰던 소년 "무케스"와 나눈 광장은 기억의 주머니를 가득 채웠다. 많은 여행자들 중에 감정의 톱니바퀴를 맞추는 것이 쉽진 않을 것이다. 스쳐 지나는 여행자가 아닌 "친구"가 된다는 것, 친구이기에 드는 걱정의 순간들. 그 시절 만난 그 순간의 그들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어디 내놓아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네팔 광장의 밝은 미소를 보여주던 어린 친구들이 2015년 큰 지진에도 건강히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뜨겁게 느껴져 눈물을 감추기 힘들다.
우유니에서 2초간 숨을 참으며 건넨 인사말 한 마디는 오래전 그녀에게 닿았을까. 베트남의 아득하게 느껴졌던 하얀 벽 위에 그려진 선들은 흐려진 낯빛으로 남아 있을까. 담배 한 개비와 짜이잔 한 잔으로 나눈 이야기는 인도 어느 곳에서 회자되고 있을까. 페장 시간에도 그림을 마저 그리도록 느긋하게 기다려주었던 스페인의 성 가족 성당의 문지기의 온정은 여전할까. 이토록 아련하게 손에 잡힐 듯 그려지는 그곳들이 기억에 자리하고 있건만 테러와 자연재해로 눈물짓게 되니 비통함과 더불어 애틋하다.
저자는 그림과 사진으로 여행을 추억한다. 카메라 뷰파인더가 주는 감정의 크기에 시간을 할애하고 머물렀던 곳에 피워낸 그의 벽화는 여행자 박세열을 기억한다. 남겨둔 추억은 그의 손길을 따라 '구름'으로 흐르기도 하고 '강'으로 여울치기도 하며 '빛'으로 쏟아진다. 활짝 만개한 꽃처럼 펼쳐진 감정 위에 여행의 '삶'이 새겨진다.
지난온 도시의 화려한 외형에 매료되기보다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을 향한 담담한 표현이, 지난 온 시간을 그림으로 남긴 저자의 손길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기 아쉽게 한다. 조금 더 느리게 여행을 해야겠다는 박세열 저자의 마음가짐에 나는 한 번 더, 조금 더 천천히 책을 읽어야겠다 마음먹는다.
목적을 향해 달리는 계획에서 잠시 벗어나 무심하게 바라본 길 위의 풍경은 보고 싶은 마음, 가고 싶은 열망을 안겨준다.
'느긋함이라는 비슷한 느낌 때문에 늘 구분해내기가 쉽지 않다. 여행 중 게으름과 여유는.' (본문 발췌)
그 시간의 틈새마다 낮게 비집고 들어오는 '공감'을 공유한다. "아, 그리움." 소리 내어보는 그리움의 시간. 오늘의 하루 [보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