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잠재기억 여행사
박재현 지음 / 아성민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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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기억 여행사] / 박재현 지음 / 리디북스 e Book

 

리디북스로 만나는 두 번째 e Book인 [잠재기억 여행사]를 읽고 나니 호접몽의 나비가 생각난다.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어느 쪽이 진정한 현실인지, 현실의 괴로움을 부정하고 머물 수 있는 그곳이 행복하다면 그것이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옳다고 느끼는 것이 실은 '허상'이었고 허구라 믿은 것이 진정 바라던 '자아'라면 어느 것을 선택함이 옳을까. 기억을 파고들어 추억을 생생하게 되새기는 것, 잠재기억 여행사는 사람들이 놓쳤던 때, 되돌아가고 싶어 했던 그때로 이끌어주는 여행사이다. 기억에 관여하지 않고 흐르는 대로 놔두면 안전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과학의 정확성과는 다르게 사람은 후회의 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기억에 관여하고 바꾸려 하는 미련함인지 아련함인지, 그렇게 현실에 되돌아오지 못하고 머물게 되는 코마 상태에서 그들은 머물고자 했던 기억 속에서 행복할까.


남편과 아이를 선박 사고로 잃고 홀로된 지 5년째인 여자와 여동생이 살해범에게 살해당하여 오로지 범인을 쫓는 형사인 남자. 이 둘의 이야기가 교차돼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접점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점차 밝혀지는 그들의 연관성은 필연적인 만남이 아니더라도 존재의 유무를 향한 끝없는 물음에서 비롯된다.


그리움으로 인해 시작한 잠재기억 여행은 어느새 일생을 간섭하고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은정' 자신을 망가트린다. 오로지 남편과의 추억, 아이와의 그리움을 다시 느껴보고자 했던 여자 은정. 과거는 과거로 묻고 살아가야 함을 알면서도 사랑했던 이들을 잃은 현실은 척박하기만 하다. 잠재기억에 의존하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진다.

선박사고의 순간을 되새길 때 사고의 순간을 보면서 '세월호'가 생각났다. 책의 마지막 부분 '작가의 말'에서도 본인이 그 부분을 쓰면서 '세월호'를 떠올렸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다행히도 기억을 흩트리고 관여함으로써 대부분의 사람들이 탈출하였듯이 시간을 돌려 그 시간으로 간다면 희생자의 가족들도 되돌리고 싶으리라. 아직도 생생한 아픔을 견디고 있는 유족들, 되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들. 지독히도 짠 바닷물이지만 그들의 눈물에 비할까. 곁에 없다는 것은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선다. '은정' 또한 그리움이 아닌 절절함을 잠재기억을 통해 해소한다. 그러나 그 절절함이 은정만의 몫은 아니었다. 남편 '선우'의 현실에서는 오히려 은정의 죽음을 되돌리고 싶어 한 기억의 여행이 가져온 결과이다. 이러하니 어느 것이 현실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여동생의 죽음은 형사 '상식'을 옭아맨다. 단순한 여동생의 죽음이 아니라 한 가족의 붕괴가 되어버린 그 사건에 얽매여 살인범을 검거했으나 여동생을 죽인 범인이 아니었음을 알고 다시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 와중에 여동생과 친했던 지인의 잠재기억 속에서 범인을 추론한다. 살인범과 맞닥드린 현실에서 애써 지운 자신의 잠재기억이 헤쳐진다. 친 여동생이 아니었기에 둘이 가졌던 감정으로 인해 감추어진 현실이 드러나며 또 다른 잠재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실을 거부하고 아픔을 외면함으로써 일부는 기억을 봉합하기도 한다. 강한 부정은 진실을 지우기도 한다. 뇌가 가져오는 '기억 봉쇄'는 자아를 혼란스럽게 한다. 진실이라 믿은 것이 왜곡의 산물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렇듯 현실이라 믿었던 것이 비현실로 이루어진 기억의 편린이라면 그 흔적을 굳이 지우려 애쓰지 않아도, 기억하려 되새기지 않아도 내 자아가 머무는 현실은 지속될 것이다.

경계의 모호성으로 인해 이 소설이 가지는 결말은 묘하다. 서로의 기억에 관여해 존재하는 것(어느 누구의 죽음도 없는)이 진정한 은정과 선우의 현실인지 단정할 수 없고 잠재기억 여행 의자에 누워 코마에 빠진 것이 선우인지, 은정의 현실인지 결말을 확정 짓기가 묘하다. 또한 살인범의 입을 통해 듣게 된 여동생과의 진실이 상식이 가진 현실을 바꾸게 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어느 때 뇌 분야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져 기억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여행이 생길 수도 있다. 추억을 되새기는 것과 현실을 살아가는 것. 어느 것 하나 부정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다. 지나온 기억이 쌓여 현실이 되었기에 이런 여행이 생긴다면 나는 선뜻 참여할 수 있을까. 상식의 선을 벗어나 인간의 감정을 다스리는 뇌는 무한한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의 흔적에 머물게 되는 감정은 하나의 정의로 묘사될 수 없다. 기억 심상(心像)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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