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는 박물관 - 모든 시간이 머무는 곳
매기 퍼거슨 엮음, 김한영 옮김 / 예경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끌리는 박물관(Treasure Palaces)] / 매기 퍼거슨 엮음 / 김한영 옮김 / 예경 펴냄



 

이 책에 소개된 박물관은 대도시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하다 일컬어진 박물관이 아니라 모든 시간이 서서히 공간에 흐르게 된 곳들을 찾아가 느낀 그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때론 벅찬 마음으로 다가간 곳이다. 38명의 작가들의 손길을 거친 작품들 중 24편을 선별하여 엮은 [끌리는 박물관]은 첫 장에 소개하는 뉴욕에 위치한 주택 박물관부터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기획되고 인위적을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살았던 흔적 그대로, 몇 겹의 벽지가 눌어붙은 벽에서 흐른 세월을 느껴볼 수 있고, 그 속에서 삶이란 이름으로 부대끼며 살았던 이들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보는 시간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당대를 떨친 유명인이 아닌 이민자로서 그 주택에 머물렀던 이들이 복도에서 동동거리고, 물을 길어 나르고,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고 주어진 삶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지는 애환이 담긴 그늘이 짙게 깔린 곳이다. 그들의 손때를 머물게 한 이곳을 인생의 한 페이지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일상이었을 시간들이 타인의 시각이 더해지면서 다른 색깔을 가지게 되는 매력, 화려했던 벽지 이면에 녹록지 않았던 서민의 삶이 녹아 있으니 작가의 시점을 따라 그의 글귀를 따라 상상해 볼 수 있는 멋이 담겨 있다.


이어서 소개되는 로댕의 조각을 품고 있는 공간, '사랑하는 장소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그곳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과 나 혼자 꼭 끌어안고 숨겨두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괴로워한다.'(앨리슨 피어스 - p38 본문 발췌)에 대한 감상은 활자로 내게 읽히면서 벅찬 감동을 안겨준다. 공간이 주는 꽉 찬 벅찬 감정은 첫 키스의 설렘으로 다가오고 로댕과 까미유 클로델의 사랑의 속삭임으로 마무리된다.


카불 박물관의 실금투성이 아프가니스탄의 보살은 100여 개의 조각으로 부서진 슬픔의 그늘이고 피트리버스 박물관의 우간다 난민캠프 노란색 비행기는 꿈을 담은 희망이다. 뭉크의 절규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괴로움을 느낄 수도, 놀람으로 이어지는 환호를 맛볼 수도 있다. 작가의 의도대로 감상할 수도 있고, 자신만의 감성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24곳의 박물관은 24명의 작가가 자신만의 감상을 글로 서술하였으니 다른 작가가 그 장소를 방문한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어느 곳이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수히 이어진 역사가 숨 쉬고 있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마음에 다가오지 않더라도, 모나리자의 미소에 가려 다른 이의 눈에 띄지 않는 다른 전시물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자신이 끌리는 대로 기행 해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 복잡한 인파 속에서 생각할 여유를 가지지 못한 것보다는 그 내면에 귀 기울여 볼 수 있는 공간이 주는 무한의 세계, 시간이 주는 유한의 감각을 느껴볼 수 있다면 의미 있는 관람이 될 것이다. 각 박물관마다 위치와 인터넷 주소를 적어 놓아 글을 보고 필요하다면 찾아볼 수 있는 세세함이 있다. 또한 책 말미에는 박물관의 모습을 담은 실사가 담겨 있다.


익숙함에서 오는 경이로움, 때때로 느껴지는 일상의 변화를 만날 수 있는 [끌리는 박물관]을 보니 예전에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에서 전시했던 'Being Together'가 생각난다(2013년 4월). 싱가포르 한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영상과 사진 전시였는데 문득 그 조용했던 박물관의 전경과 어둠 속에 펼쳐진 삶의 이야기가 몇 년이 지난 지금 더 깊게 다가온다. 내 삶을, 우리의 일상을 전시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짙게 남겨진 손때가 주는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 산발적으로 내리던 스콜 내음이 가깝게 흡입되는 것을 보면 무심하게 흘러간 삶의 무게를 의미 있는 공간에 담아둘 수 있어 기껍다.


다만, 이 책에 소개된 박물관들의 위치가 대부분 미국과 유럽에 위치하고 있고 중앙아시아 쪽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랜 역사에 걸맞게 찬란한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지만 아직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한 유산들이 빛을 보기를 바라본다. 아시아의 의미 있는 전시관들이 더욱 활성화되어 작가들의 마음이 담긴 책으로 만난다면 더욱 뜻깊을 것이다.

 #끌리는박물관 #작은박물관 #Storyofar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