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 일왕 부자 폭살을 꿈꾼 한 남자의 치열하고 뜨거운 삶과 사랑
안재성 지음 / 인문서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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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 / 안재성 지음 / 한림출판사 펴냄

 

 

요즘 많이 시사되고 있는 인물, 박열을 심층적으로 살펴본 책이다. 박열의 본명은 박준식이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부터 본인 스스로 박열(朴烈)이라 불리기를 원했던 강한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로 불리는 그는 사회의 이념과 관념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다. 굳건한 신념으로 오로지 그 길만을 바로 가고자 했던 굳은 의지가 있는 인물이다. 많은 선인들이 독립 조선을 향한 염원을 키웠다.  일본 민족을 향한 증오의 염, 조선 독립의 염을 위해 적극 나선 이들 중 한 명인 박열을 재조명한다.


부유치 못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끝없이 높은 학구열은 박열을 앞으로 나가게 했다. 그러나 식민의 조선인 학교는 그의 갈증을 해소시키지 못했다. 그는 일본 열도에서 본격적인 배움과 활동을 시작한다.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는 사실에 기초한 일련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남달랐던 어린 시절부터 청년 박열의 기개와 일련의 재판 과정, 22년간의 옥중생활을 거쳐 독립된 나라의 박열, 납북된 박열, 그의 일대기가 담긴 책이다.


18살의 청년 박열은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무권력과 무지배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흑도회 등의 단체를 설립했다. 조선인으로써 받은 불평등은  그의 내면을 단단하게 했으며 세상을 향한 포효는 거침이 없었다. 자신이 옳다 여기는 신념 앞에서는 결코 비굴하지 않았고 지난 간 것을 연연치 않은 바람 같은 기개를 지녔다.

진리란 무엇인지, 사람의 진정됨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박열은 지속적인 물음을 가졌다.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스스로 길을 열어 나갔다. 일본의 억압에 아랑곳하지 않고 행보를 지속했던 박열은 같은 마음을 가진, 사상을 나눌 수 있는 인물을 만났다.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 여인이었으나 혹독한 어린 시절로 인해 사회에 반감을 가졌고 그로 인해 가네코 후미코의 사상은 억압되고 불평등한 세상을 향해 울분을 마지않았다. 그런 그녀가 박열의 정신을 사랑했다. 그와 함께 살아간 짧은 세월, 그들이 나눈 사랑과 사상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퇴색되지 않았다. 그 믿음은 실로 굳건하다.


일본을 향한 비판, 물리적인 투쟁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단단하게 결속시켰다. 일본왕족의 황태자를 폭살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으나  일본으로 폭탄을 들여오는 것은 늘 현실 앞에 부딪혔다. 쉽지 않은 경로였지만 그들은 포기를 몰랐다. 일본 황실을 목표로 삼은 이유를 박열은 [1. 일본 황실의 신성함을 떨어뜨리고, 2. 조선 민족에게 독립의 열정을 자극하고, 3. 일본 사회운동가들에게 혁명의 기운을 넣기 위해서]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본문 발췌 p125) 박열은 일본 사회 운동가들과 뜻이 같았다. 일본인이었으나 야욕과 제국주의에 편승하지 않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투쟁한 인본주의자들과 친분을 다졌다. 이들은 1923년 광동 대지진 때 붙잡히고 죽음을 맞이했다. 혼란을 틈타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을 몰아내기 위한 일본의 계략에 무참히 희생되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도 그때 붙잡혔다. 총 21회, 20개월간의 예심 동안 법정에서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법정을 호통하는 기개와 인간을 향한 열정을 숙이지 않았다.


박열과 가네코의 절개와 강단은 예심판사 다테마쓰와 사형을 선고한 재판장 마키노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피고인이 아닌 조선 대표로 법정에 서서 호통을 내리고 사형을 선고받고도 물러섬이 없었으며 옳고 그름을 선포한 그들을 향한 존경은 표명하는 뜻이 다르다 하여 그들을 멸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존경을 받았다. 일본의 필요에 의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형이 집행되었지만 가네코는 사형을 환영했고 죽음 앞에서 강했다. 스스로 치욕을 견디느니 짧은 생을 마감한 그녀를 많은 이들이 기린다.


독립을 향한 염은 많은 조선인들을 결속했다. 독립을 향한 방법이 다르고 품은 뜻이 달랐으나 염원하는 바는 같았다. 그럼에도 해방 후 조선은 자주 국가로서 나라를 추스르지 못했다. 외세에 휩쓸려 완전한 독립국가로 나가지 못하고 전쟁과 분단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납북된 박열은 1974년 73살로 사망했다. 납북 후 그는 애국지사로서 북한에서도 고위층으로 대접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에 박열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가네코 후미코의 묘는 2003년 박열의사기념공원으로 이장되었다.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는 사실에 기초한 박열의 일대기를 살펴볼 수 있는 책으로 예심과 본심에서 박열과 판사가 주고받은 진술과 박열이 작성한 <한 불량 선인으로부터 일본의 권력자 계급에게 전한다>, <나의 선언>, <일하지 않고 잘 무위도식하는 론> 등 허무주의 사상을 정리한 글들이 실려있다. 그의 말과 글을 보면서 박열이 추구했던 허무 사상과 인간 평등사상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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