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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모래 - 이시카와 다쿠보쿠 단카집
이시카와 다쿠보쿠 지음, 엄인경 옮김 / 필요한책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
한 줌의 모래 / 이시카와 다쿠보쿠 지음, 엄인경 옮김 / 필요한책 펴냄
一 握 の 砂, [한 줌의 모래]는 일본의 서정시인 단카로 이루어진 책이다. 작가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26세의 일생 동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한 줌의 모래]는 그가 폐결핵으로 사망할 때까지 남아 있는 단 하나의 단카 작품집이다. 백석의 문학적 스승이며, 최승희가 영감을 얻은 삶의 노래가 가득한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작품집이다.
'단카'란 무엇인가, 일본 문학의 일부이지만 일반적인 소설과는 다른 형태이기에 먼저 단카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했다. 일본의 정형시로 5구 5.7.5.7.7.7조, 31음절로 되어 있는 것이 단카라고 한다. 기존 단카의 다섯 구 형식이 아닌 세 줄 쓰기로 보다 자유롭게 표현한 다쿠보쿠의 단카(p310 본문 발췌)이기에 형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서정적인 부분이 더 물씬 느껴진다.
저자의 일생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가난과 불행이라는 올가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했으나 그가 남긴 시는 가슴을 울린다. 단카라는 작품의 형식에서 벗어나 그저 일상을 노래하고 마음을 읊은 한 시인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생각으로 [한 줌의 모래]를 손에 움켜쥐었다.
3줄씩 한 단락을 이루는 그의 시는 그 3줄이 하나의 이야기이면서 다른 단락과 이어지는 노래이다. 별도로 제목이 없기에 더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노을 지는 해변가에 앉아 한 줄 읽어 내려가다가 교교한 달빛 아래서 정점에 이르는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비로소 찍게 되는 그의 시는 삶을 노래한다.
"그런 정도의 일로 죽어야 하나"
"그런 정도의 일로 살아야 하나"
그만해라 그 문답
(p30 본문 발췌)
에서는 햄릿의 낮은 음성이 오버랩된다.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 내면의 갈등이 빚어내는 소리.
저자의 울분과 평탄스럽지 못한 삶이 그의 감성을 담은 시를 생산했다. 그의 삶은 비관적이었으며 그의 시는 쓸쓸하다.
다스려지는 세상의 무탈함에
싫증난다고 말하던 때야말로
진정 슬펐던 게지
(p202 본문 발췌)
[한 줌의 모래]는 본디 [일을 마친 후]라는 제목이었는데 출간이 준비되는 동안 그의 아들이 죽었고, 죽은 아들을 추모하는 단카들이 추가되어 현재의 책으로 완성됐다.(p298 각주 설명) 이렇듯 시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각주 설명이 잘 되어 있다. 진정 그의 삶은 쓸쓸함이다. 무엇으로 위로받을 것인가, 무엇이 그를 위로했을까.
슬픈 마음이 한참은 모자라는
쓸쓸함이여
(p301 본문 발췌)
지독히도 씁쓸한 그의 삶은 시대의 사상가라는 이름을 주었으며 서정(抒情)을 남겼다. 핸드폰 보다 조금 더 큰 [한 줌의 모래]는 기차 여행을 하며 차장에 기대어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부담 없이 가방 한쪽에 찔러 넣고 다니다가 문득 바람의 소리를 듣고 싶을 때, 파도에 지친 몸을 뉠 때, 쨍한 햇살에 어지러울 때, 피곤을 위로하려 이불 속을 파고들 때, 그렇게 여행길에 동행해도 좋을 책이다.
가는 소리로
여기저기 곳곳에 벌레들 우네
낮의 들판에 와서 읽는 편지로구나
(p283 본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