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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악한가 - 가깝지만 정말 가까워져야 하는 나라, 일본! ㅣ 일본 연구 시리즈 2
신규식 지음 / 산마루 / 2017년 4월
평점 :

서평-----------
일본인은 악한가_일본 연구 시리즈 2 / 신규식 지음 / 산마루 펴냄
일본 연구 시리즈 두 번째, [일본인은 악한가]. 전권 [일본인에게 애국심은 없다]가 일본인에게 애국심이 어떤 의미인지 확인할 수 있었던 책이라면 [일본인은 악한가]는 일본이 가지는 국가적인 이념을 떠나 개개인의 양심이 더 큰 대의를 이룰 수 있음을 살펴보는 책이라 생각한다. 일본 연구의 기본서로 불리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서문을 보면 일본인은 충실하면서도 불 충실하며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맞이한다고 한다. 이 내용은 앞선 전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훈련되었지만 양심에 따라 행동한 일본인도 있다는 것을 본문에서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일본인은 악한가, 악함의 기준을 분명한 선을 그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전쟁 당시 악랄함을 보여준 사람들과 자신들의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도와준 이들도 있고 연민은 있으나 차마 이념을 배신할 수 없었던 중도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비단 일본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이 일본인에 대한 연구라고 명명하고 있는 만큼 여러 일본인을 소개하고 있다.
전쟁 막바지에 미군 포로를 생체 실험에 이용한 규슈 제국 대학의 군의관과 의사들의 만행, 차마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은 자행한 마루타 실험은 어느 나라 포로이건 가리지 않고 실행되었으니 참으로 극악무도하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인권이고 양심이고 아무것도 거리낌 없었던 잔인함에 치를 떨게 된다. 바닷물을 주사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윤동주와 송몽규처럼 사그라진 청춘들을 어느 누가 보상할 것인가. 타의에 의해 전쟁에 끌려나가 전장에서 최후를 맞이한 이들을 누가 위로해 줄 것인가. 자신들의 잘못을 가리고자 관련 자료들을 파기했지만 진실을 감추어지지 않는다. 현대에 이르러 규슈대는 전쟁의 만행을 속죄했다. 뒤늦게나마 사죄의 마음을 갖고 해당 자료들을 전시했다.
윤동주 시인을 기리고 자필 원고와 사소한 낙서까지도 모아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 전집>을 발간한 사람은 일본인 오무라 마쓰오 교수다. 그가 윤동주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유족을 설득하며 10년간 열정을 다하는 그 순간에도 어느 한국인도 윤동주의 원고를 찾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민족을 넘어 한 시인의 서정성을 제대로 알아본 오무라 교수가 아니었다면 발간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1923년 관동 대지진을 틈타 조선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음해한 사건을 어찌 잊을까. 자연재해를 이용해 조선인뿐만 아니라 눈엣가시처럼 여긴 일본 좌익을 처단하는 일본 정부의 잔악함은 또 그대로 드러났다. 이념이 다르다고 타인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조직적인 무심함이 있었던 반면 일본의 만행을 지나치지 않고 조선인을 도와준 이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본인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그들이 지킨 양심에 감사함을 표한다. 또한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외무성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영사관 앞의 수많은 생명을 외면할 수 없어 독단적으로 4,500장에 이른 비자를 발급하여 약 6천 명의 유대인을 살린 스기하라 영사는 결국 사임된다. 더 많이 발급하지 못하여 안타까워했던 그는 불이익을 받는 현실에서 후회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것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 잘못된 것은 없는 것입니다."(p92 본문 발췌) 그의 박애주의와 인도주의에 박수를 보낸다.
이념을 떠나 양심을 지킨 사람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보여준 이들이 있다. 일본인의 조심스러운 웃음 뒤에 어떤 양면성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나 최소한의 인도주의를 품고 있다면 그 미소는 타인을 향한 진정한 마음으로 표현될 것이다.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맞서서 목소리를 내 준 이들이 있지만 여전히 일본은 제국주의에 물들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당신들에게 '양심'은 무엇인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