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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사장을 납치한 하롤드 영감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잔(도서출판)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왜 하필 그 사람을 납치하려는 거죠? 혹시 이케아에서 구입한 조립식 가구에 못이 하나 빠졌던가요?" (본문 발췌)
서평------------
이케아 사장을 납치한 하롤드 영감 /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도서출판 잔 펴냄
I morgon er det måndag(내일은 월요일). 소설은 어두운 밤, 눈 내리는 도로 위의 하롤드 M. 룬데 영감의 작은 계획에서 시작한다. 노르웨이에서 스웨덴으로 향하는 여정, 이케아 사장 잉바르 캄프라드를 납치하기 위한 시작이다. Norway Åsane, 오사네에 이케아가 들어서면서 평생 가업으로 여겨온 가구점이 부도에 처하게 되고 부인은 요양원에 있고 자신의 삶이 이리저리 휘몰아친 눈보라 같다고 여긴 하롤드는 이케아 사장을 납치하기 위해 권총 한 자루와 추억이 담긴 앨범을 지참하고 자신의 사브를 몰고 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 속에 하롤드의 어린 시절, 청년을 거쳐 노년에 이른 삶이 들어 있다. 거대 기업의 출현으로 평생의 삶이라 여긴 터전이 변하고 함께 40년을 살아온 부인이 기억의 부재를 겪고 친구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등지게 된 순간, 하롤드는 엉망이 되어버린 인생을 풀어버릴 해방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도 세상으로부터 사그라질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그는 한탄을 들어줄 사람으로 이케아 사장을 선택한 것일까, 다소 무모한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지독히도 내리는 눈을 뚫고 국경을 넘어 스웨덴으로 간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자부한 삶이 거부 당했다. 자신의 가치는 사라지고 지금의 현실이 부당하다고 느낀 하롤드는 이케아를 전나무에 비한다. 주변에 자라는 온갖 양분을 다 끌어모아 자기 몸을 키우는데 쓰는 전나무 같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겐 양분을 빼앗기는 공간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생존의 공간일 것이다. 부당함으로 여긴 이들도 있으나 이케아의 시스템으로 삶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가구는 사람을 담는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하롤드 영감은 이케아의 시스템이 이해 불가이다. 변화는 필수 불가결하다. '시간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에 눈과 귀를 열어 놓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변화와 경쟁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고집스레 제자리만 지키고 서 있다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p198 본문 발췌) 하롤드 영감은 독백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향해 탄식한다.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순응하기엔 지켜온 자존심이 서글퍼 외면한 현실이 이토록 무력감을 안겨준다는 것을 하롤드 영감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일 뿐.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비단 하롤드 영감만 겪는 일은 아니다. 기술의 발전과 거듭되는 산업혁명이 생활의 편리함을 안겨다 줄 수는 있어도 그로 인한 인간의 무력감은 보듬어 줄 수 없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케아'란 거대 기업이 동종업계 소상인의 터전을 흔들고 일상이라 여긴 삶을 흐트러 놓는데 일조했다는 것을 전제로 소설을 전개한다. 농촌이 소도시로 변화하고 더 큰 시장을 찾아 떠나는 청년들과 작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사람들, 노년의 삶을 이해하지 않는 사람들과 젊은이들의 패기를 한낮 치기 어린 상태로 치부해버리는 불통을 이야기한다. 지나간 인생을 돌이켜볼 수 있는 마음을 열어준다.
평생 동반자라 여긴 가구와 아내를 떠나보냈다. 본인이라 여긴 가구와 점차 자신과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를 눈물로 머금은 하롤드의 마음은 공허하다. 그 공허함을 채우고자 '납치'라는 도구를 통해 일생일대의 후회와 복수, 희열을 가져보고자 했다. '소리 없는 슬픔은 끝까지 나를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복수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이 세상에 복수가 설자리는 없다는 사실을, 복수는 이 세상을 인간다운 것으로 과다하게 채우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라는 사실을....' (p200 본문 발췌)
그의 마음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단지 그는 아내 마르니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을 뿐이다. 온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내일은 월요일인가. 기억하오 마르니? (중략) "내일은 월요일이에요.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날이죠. 좋은 한 주가 되리라고 믿어요."'(p205 본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