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아야세 마루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아야세 마루, 소미미디어



서평----------------------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 아야세 마루 지음 /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펴냄

 

 

  봄의 잔잔함이 느껴지는 계절에 만난 여러 색색의 다양한 꽃을 품은 이야기,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는 이 세상에 많은 꽃만큼이나 유대관계를 품은 가족의 이야기다. 신칸센으로 연결된 현마다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품고 있고 은은한 빛깔의 꽃 색으로 표현된다. 목향장미, 탱자, 유채꽃, 백목련, 벚꽃의 각 색이 하나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향기와 함께 풍겨 나온다. 다섯 가지의 단편으로 묶인 한 권이지만, 도호쿠 지방 신칸센을 타고 고향을 찾고 여행을 하는 그 일련의 공통점이 이야기의 연결 고리이다. 


첫 이야기인 '목향장미 무늬 원피스'에서 화자는 '우에노'역에서 하차한다. '탱자 향기가 풍기다'는 후쿠시마 역, '유채꽃의 집'은 센다이역, '백목련 질 때'의 하나마키 역과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는 도쿄로 향하는 신칸센이 등장한다. 다섯 가지 색이 그 역마다 어떻게 물들어 가는지, 어느 한 지역의 공간적 배경과 가족의 이야기라는 시간적 배경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목향장미 무늬 원피스] 어느 날 여행지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 그 사람과 살기 위해 독립을 선언했으나 그 사랑이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떠난 이후 다시 혼자가 된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 신칸센을 타고 우에노 역에서 내리는 것으로 첫 이야기는 시작된다. 목향장미 무늬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할머니는 "새로 산 예쁜 원피스를 입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거, 오랫동안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단다."(본문 발췌)라는 수줍은 고백으로 사랑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가 어찌 되었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란색 목향장미는 노년의 시간과는 상관없이 피어오른 정열이지 않을까.


  [탱자 향기가 좋다]의 후쿠시마는 외지인들에게는 원자력 피해라는 공포로 꺼려지고 숨겨지는 곳임에도 절망과 죽음을 딛고 그곳에서 삶을 꾸준히 가꾸어 가는 사람들의 웃음이 어려 있다. '지진 이후 후쿠시마는 확실히 어려운 상황이라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긴장되는 것은 사실이지만,'(본문 발췌) 향기는 약하지만 그 향기들이 모여 공포를 이겨낸 사람들의 터전. 탱자의 향기는 은은하게 그 자리를 맴돌 것이다.

 

  [유채꽃의 집]은 몇 년 전 돌아가신 엄마의 제삿날의 풍경이다. 엄마의 동백꽃 가득했던 정원이 어느새 며느리의 유채꽃으로 노랗게 물들며 서로를 향한 사랑과 미움이 함께 어우러진다. '사실 타케후미는 어머니의 껍질을 벗어던진 '니시마츠 요시노'라는 한 사람의 여자와 이야기한 적 따위 한 번도 없었다. (중략) 아무것도 모르는 채, 어머니니까 무조건 우리들을 받아 주었으면 좋겠다.(생략)'(본문 발췌) 노란 유채 꽃잎을 입안에 넣고 쌉싸래한 봄 향기를 느끼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쌉사래한 향. 


  [백목련 질 때] 어느 날 함께 청소하던 친구의 부재. 어린아이에게 다가온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윤회라는 세계관을 들어 풀어낸 이야기이다. "하지만, 치사해. 전혀 다르잖아. 미도리에겐 그런 식으로 결혼식을 올릴 시간 따위 없는 걸."(본문 발췌)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신칸센을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의 귀성, 어딘가 인연이 있는 곳으로의 발걸음. 그것이 가족이든, 연인이든 향할 곳이 있다는 것은 위안이 된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 한, 관계성이란 사계절을 지내는 벚꽃처럼 꽃이 만개하는 때와 추위에 시드는 때를 반복하며 어느 한 가지 모습만 보여 주지 않는다.' (본문 발췌)


  이처럼 이야기가 품고 있는 죽음과 삶이 공존, 인간과 인간의 관계성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찾고 있다. 할머니의 짧은 사랑이 떠나갔고, 후쿠시마 지진으로 많은 이들이 죽었고, 무조건적인 자신들의 편이지만 때로는 고리타분한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어머니를 기리고, 친구의 죽음이 자신에게도 일어날까 전전긍긍하면서도 미처 맞이하지 못한 그 친구의 미래가 안타깝고, 많은 이들의 여행을 보며 돌아갈 곳을 향한 그리움이 가득한 그들 모두 만개한 벚꽃 아래에서 꽃 비를 맞으며 미소 짓고 있는 풍경이 그려진다. 미련이든, 추억이든 세상에 대한 관계성은 지속된다. 윤회를 믿는다면 어느 날 내가 어느 모습이든 다시금 오색찬란한 봄을 맞이하겠지.


  일본 지역에 대해 잘 모르는 터라 도호쿠 신칸센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운행되는지, 소설에 등장하는 각 역은 어디쯤에 위치하여 연결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그러나 만족할 만큼 정보를 얻지 못했으니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인가. 일본으로 여행을 한 번 다녀와야 할까? 신칸센을 타고 각 역마다 잠시 정차하여 소설의 정취를 느껴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끔 한다. 책 한 권이 여행으로 이어지는 여유를 제공한다. 20대 때였다면, 아니 10년만 젊었다면 내가 처한 환경을 툭 털어버리고 마음속에 결심한 대로 떠나볼 용기를 내었을까, 좀 더 패기가 있다면 지금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 완료했을지도 모르겠다. 

  책 안쪽에 엽서 한 장이 들어 있다. 분홍 벚꽃이 가득한 엽서. 지금은 벚꽃이 사그라들었지만(벚꽃이 핀 시기가 짧아 늘 아쉽다.) 며칠 전에 내린 벚꽃 비가 아파트 위까지 바람 타고 넘실대며 올라왔던 그 향기를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도호쿠 신칸센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들. 그 단편 속으로, 그 이야기가 품은 향기 속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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