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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초지로 - 고양이와 집사의 행복한 이별
고이즈미 사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콤마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서평-------
안녕, 초지로 / 고이즈미 사요 글, 권남희 옮김, 콤마 펴냄
고양이와 집사의 행복한 이별, 어떤 이별이든 슬프지만 그 이별하는 순간까지 서로를 향한 마음이 충분했기에 행복한 이별. [안녕, 초지로]는 고양이 초지로와 보낸 142개월의 기뻤던 순간을 기리며 고이즈미 사요가 쓴 글이다. 어느 만남이든 한 눈에 딱 서로에게 이끌리는 만남이 있다. [안녕, 초지로]의 화자인 글쓴이가 그랬고, 그날 한 어미의 한 배에서 한 날에 태어난 초지로와 라쿠가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 가족이 되어 함께 한 시간들. 더 긴 시간, 더 오랜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았겠지만 함께했던 시간만큼은 서로를 향한 사랑이 충분했기에 아름다운 이별로,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
애묘가 가 아닌 나는 고양이의 특성을 잘 모른다. 그럼에도 소소하게 고양이들로부터 얻은 위안과 삶의 평온함이 느껴진다. 서로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고양이를 키우면서-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표현하는데 키운다, 돌본다고 해야 할까. 도움을 준다고 해야 할까- 웃음이 끊이지 않은 그들의 삶과 초지로의 죽음을 맞이하며 보여준 사랑을 저자는 슬픔을 간직했지만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정'이라는 것이 온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기에 쉽게 불타오르고 사그라들지는 않는다. 켜켜이 쌓아온 '정'이 애틋함이 되고 고마움이 되는 '사랑'으로 표현되는 것은 마음뿐만 아니라 그 대상을 향한 손끝, 눈빛에서 느껴진다. 그 대상이 생명을 가진 동물이든 식물이든 온전히 마음을 주고 최선을 다해 돌봤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종양이 생겨 언제 떠날지 모르는 초지로를 보며 느꼈을 슬픔은 비단 사람에게만 속하는 것은 아니다. 말 못하는 대상이라도 서로의 교감이 통했기에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한 것임을 저자는-이젠 떠난 보냈으나 그 이별의 순간이 더디게 다가오길 바랐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면 주저앉게 될까 봐 애당초 초지로의 아픔이 없기를 바랐을 것이고, 초지로가 처한 상황을 인지하니 후회가 남지 않도록 돌보고 싶었을 것이고, 이별 후에도 초지로를 기억하고자 쓴 글이 저자에게도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다른 고양이보다 몸집이 큰 초지로가 점점 작아지고 야위어가며 끝내 혼자의 힘으로 버티지 못한 시간까지 늘 곁에서 따듯한 눈으로 바라봐 준 저자의 가족이 있었기에 초지로의 마음도 편안했을 것이다.
고로롱 고로롱 거리는 초지로의 낮은 소리, 앞발 가지런히 모으고 바라보는 초지로의 모습, 라쿠와 때때로 다투면서도 늘 함께였던 초지로,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 저자의 품에서 잠든 초지로. 어느 순간이든 귀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집사에게나 초지로에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