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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평점 :

중편 소설인 [동급생]은 한 손에 들고 읽기에도 부담 없는 크기다. 책 표지의 짙은 종이 냄새가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읽는 내내 독일의 풍경이 바람을 타고 나를 흔들어 놓았는데 어느 순간 30년이 흐른 미국 뉴욕에서 화자인 한스의 먹먹함을 대하고 나니 나 또한 그러한 기분이 들어 쉽사리 마지막 문장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서평-------------------------------------------------------
동급생(Reunion), 프레드 울만(Fred Uhlman) 지음 / 황보석 옮김
[동급생]은 193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두 소년이 나눈 우정의 색채가 나치가 독일을 장악함으로써 그들의 찬란함이 빛을 잃어가게 되는 청소년기의 두 청년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총 151page에 달하는 본문 내용에 앞서 [동급생]의 시작은 21page부터 시작된다. 본문에 앞서 1976년 6월에 아서 케스틀리가 작성한 1977년판 서문과 1997년 장 도르메송이 [동급생]을 읽고 써 내려간 서문이 발췌되어 있다. 이 두 서문에서 작가 프레드 울만의 섬세함으로 쓰여진 [동급생]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동급생]의 첫 페이지, 첫 문장을 눈에 담는 순간이 참으로 떨린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본문 발췌) 이 문장에서 보듯, 화자인 한스는 오랜 시간 자신의 특별했던 벗, 콘라딘을 잊지 않는다. 결말에서 느껴지는 먹먹함은 한스가 받았을 순간의 암전이 나에게도 그대로 옮겨진 듯하다.
유대계 독일인인 한스 슈바르츠는 독일 귀족인 콘라딘 폰 호엔펠스를 처음 만난 순간, 콘라딘이 교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를 향한 맹목적인 우정이 시작되었다. 배경이 나치즘이 만연했던 시대인 만큼 유대인과 독일인의 만남부터 불행이 그들을 쉽게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편 소설에서 1/3을 차지할 만큼 한스는 콘라딘의 이목을 끌기 위해 본인의 역량을 다한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저 곁을 내어준 것이 아닌, 그만큼의 노력을 통해 콘라딘과의 우정을 다지게 되는 과정이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누구 혼자만의 일방적인 우정이 아닌, 공유하는 우정으로써 삶을 나누게 되는 그들은 빛나는 사춘기를 보낸다. 예민한 시절에 뜻을 함께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둘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온전히 ‘나’와 같지는 않기에 논쟁을 하는 일도 있지만 그것이 둘의 사이를 갈라놓을 만큼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유대인들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도 한스는 못내 힘들지만, 독일 귀족인 콘라딘에게 피해가 갈까봐 한스는 콘라딘을 외면한다. 그리고 부모의 권유에 따라 그는 미국으로 홀로 건너와 공부를 한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책을 쓰고 싶었으나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변호사가 되고, 결혼을 하고 일명 성공한 인생이 되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마음 한편이 텅 비었다. 독일을 사랑했던, 자신들이 독일인이라 의심치 않았던 부모는 나치들의 감시가 심해지자 스스로 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한스는 그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수용소에 끌려가 죽지 않아도 되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그 당시의 유대인 학살은 전 세계를 경악게 한다.
독일에 대한 애증은 한스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자신이 독일에서 다녔던 학교에서 작은 인명부와 2차 대전으로 죽은 동창생들을 기리는 추모비 건립을 위한 기부를 부탁하는 호소문이 한스에게 도착한다. 한스는 처음에는 분노했다. 그들의-유대인이라며 한스를 외면했던 그들을 위한 기부를 부탁하며 내민- 그 염치없음이 한스를 분노케 했다. 그럼에도 한스가 그 인명부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찬란한 청소년기의 단 한 명이었던 친구를 그리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차마 그의 이름부터 찾아볼 용기가 없어 손끝이 다른 곳을 헤맸지만 결국은 그를 찾기 위해 눈길을 준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하얀 종이 위에 검은색으로 인쇄된 글자에 불과하다. 그의 이름은 불러도 더 이상 빛을 내지 못한다. 마지막 한 줄까지 읽어 내려갔을 때 갈 곳을 잃은 내 눈길은 그 자리에 머물렀다. 몇 번이고 마지막 줄을 되뇌었다. 다소 쉽게 책을 덮을 수 있는 결말이 아니어서, 한스도 그러했을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 나는 한동안 숨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 시절의 그들은 주변의 생명체들이 가진 그 나름의 빛깔이 경이롭게 느껴질 만큼 서로가 주는 위로에 안심하고 행복에 충족되어 있었다. 섬세하게 묘사되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풍경-오래된 주택과 거리, 라인 강을 거쳐 북해에 이르는 물의 흐름까지 그 당시의 바람과 공기가 입혀져 내 눈앞에 펼쳐진 듯하다. 작가의 필력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 책을 결코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신념과 이념을 떠나 인간의 이기심으로 발발된 전쟁으로 사그라진 생명들에 경의를 표한다. 더불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전범국가로서 주변 국가에 제대로 사과하고 처신하는 독일에게도 비록 그 시대의 크나큰 잘못이 사라지지는 않을지언정 그들의 국민성을 높이 산다. 무조건 잘못을 가리기에 급급하지 마라. 모른체한다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상처가 그리 쉽게 잊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