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임당, 그리움을 그리다
주원규 지음 / 인문서원 / 2017년 1월
평점 :
사임당, 그리움을 그리다.-주원규
책을 먼저 받아들면 작가의 말을 읽는다.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에 고심했던 날들을 [작가의 글]을 통해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유교적 사상이 지배하던 그 시대의 편견을 뚫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예술의 향기를 품었던 한 여인의 삶을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는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달랐던 신명화의 둘째 딸은 스스로 이름을 갖기를 원했다. 여인이기에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던 시대이고 그만큼 많은 제약을 받았지만, 스스로 가고자 했던 인생의 길 앞에서 불리길 바라던 당호, 사임당. 그 뜻만큼이나 그녀의 삶은 절제를 지녔다. 그 시대를 지나 후대가 기억하는 그녀의 이름은 찬란하다.
신사임당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그저 당대의 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그림에 능했던 예술인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흔히 말하는 장한 어머니상에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어머니의 길이 아닌, 사임당 본인 자신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전폭적인 지지자였던 신명화의 죽음을 기점으로 사임당은 굴곡을 겪게 된다. 강릉 친정부모에 대한 지극함과 더불어 한양 시댁에서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 이원수의 나약함과 유약함은 가족이라는 뿌리를 공고히 하지 못했기에 그 역할마저 사임당의 몫이었다.
여자라서, 여자이기에 하지 못했던 일들, 할 수 밖에 없었던 일들은 그녀의 삶을 어지럽혔다. 그런 속에서도 자식들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중심을 잡기 위해 무단히도 노력했다.
셋째인 현룡(율곡)의 비범함을 알면서도 노력은 하되 총명함이 부족했던 첫째 선과 차별을 두지 않기 위해 사임당은 현룡을 편애하지 않았다. 다른 형제보다 학문이 높음을 드러내어 교만하지 않도록, 총명치 못했던 형제가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현룡이 세상의 이치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를 바랐다. 첫째 선은 어머니를 닮고자 하는 효심이 극심했고, 둘째 매창은 사임당의 손끝을 닮았다. 그리고 현룡은 현명했다. 그럼에도 사임당의 마음고생은 그칠 줄 모르니 바로 남편 이원수의 열등감에 따른 외도 때문이다.
신사임당의 많은 작품들이 후세에 남겨질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무능력한 남편 덕분이다. 우연찮게 그려주었던 치마폭의 그림을 시작으로 그녀의 그림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비록 먹고 살기 위해 재능을 팔았지만 그랬기에 그녀의 숨결이 담긴 작품들이 빛을 보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 과정을 보면서 난 그녀의 삶이 못내 눈물겹다.
사임당은 이원수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생각을 굳건히 하고 선비로서의 자질을 갖추기를 바랐을 뿐이지만 이원수는 그것을 못견뎌했다. 그것이 외도로 나타나면서 사임당의 내면은 많이 무너졌을 것이다. 예술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부부였다면 어땠을까,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만큼 사임당에게 절실했던 것이 있었을까...
사그라지는 사임당의 그리움은 님을 향한 것이 아니다. 온전히 자신을 그대로 바라봐주었던 아버지 신명화가 ‘사임당’이라 불러주었던 그 시절의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