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19
【초승달】
모리 에토 지음 / 권영주 옮김 / 소미미디어 펴냄
혼란스러운 시절, 전쟁의 끝과 암울한 시대에서 벗어나고자 빠르게 실시된 새로운 '교육'이라는 광막한 우주에서 달도 태양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을 때(p.78), 사회에서 추구하는 엘리트 양성과 신문물 주의에 머문 교육에 대한 사견을 펼치며 지력(知力)을 가르치고 싶은 한 가족이 학원 경영을 통해 공교육과 사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제시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앎을 추구하고 교육은 백년대계로 하나의 시스템화되었다. 경쟁, 입시로 대표되는 교육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만의 길'을 고집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학연에 전전긍긍하고 서열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은 비슷한 교육열을 보이고 있다.
군국주의의 교육을 받은 지아키는 공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학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려 한다. 학원이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시대에 신교육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지아키는 딸 후치코가 다니는 학교의 조무원이었던 고로를 적극 설득해 학원을 운영한다. 고로는 지아키와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집에서 시작한 작은 보습학원이 대형화되고, 그에 따른 운영과 교육관의 대립, 가정의 마찰과 붕괴, 긴 시간을 돌아 서로를 돌아보는 희로애락을 긴 세월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3대에 걸친 이야기는 교육과 가정의 여러 모습을 그려내며 개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사회적 참여로 발전하고 있다.
나는 깊이 믿는 바, 스스로에 대한
교육을 촉구하는 교육이 진정한 교육이다.
p.138_수호믈린스키
러시아 전인교육학자인 바실리 수호믈린스키의 교육 이념을 깊이 새긴 고로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주입하기보다 자기주도학습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입시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 도움이 되는 학력을 목표로 교육의 정의를 세운다. 그에 반해 부인인 지아키는 점진적이고 빠른 변화에 대응한다. 그 과정에서 가정의 붕괴와 아픔, 다시 교육을 중심으로 서로를 보듬어 안는 내용이다.
유구한 시간을 거친 한 가족의 이야기 속에는 시대마다 바뀌는 교육정책을 떠나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어떤 아이든 부모가 해야 할 일은 하나야.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는 걸 자기 인생으로 가르쳐주는 것뿐"(p.177) 매번 바뀌는 입시 시스템의 장단점을 파악하는데 아이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익숙해질 틈 없이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입시 스트레가 나타나고 학창 시절의 자유롭고 창의로운 꿈은 내신과 학생부에 얽매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비슷한 교육 실정에 많은 공감이 간다. "허무한 건 그렇게 개혁, 개혁 하고 외쳐대는데도 성과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p.252) 무한 경쟁의 시대, 변해가는 사회 시스템, 감소하는 인구, 다변화 시대의 일자리 변화에 대응하는 교육의 현주소를 다시금 생각한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늘 교육 정책도 변화한다. 폐단을 걷어내고 진정한 교육의 연대가 가져올 긍정의 면도 없진 않지만 경쟁에서 도태될 수 없다는 조바심에 우리의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한 번뿐인 인생, 가치있게 살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노력한다지만 시스템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부조리를 용인한다는 것은 아니다.
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개선된 교육을 공약으로 내세운다. 그럼에도 우리의 교육은 자유롭지 못하고 쳇바퀴처럼 돌고 돈다. 일부 비리에 얼룩진 교육은 물질 만능주의를 부추기고 공정함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빈부 격차에 따른 교육의 지원이 고루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 이 책은 교육의 자정능력이 이루어져야 함을 말한다.
교육은 아이를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힘,
쉽사리 통제되지 않기 위한 힘을 주기 위해 있다.
늘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초승달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스스로를 연마하고 배움을 갈구하는 것. 부조리에 맞서 바람을 맞을 때도 있고, 뜻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길은 언제나 걸어봐야 정체를 알 수 있는 법'(p.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