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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치넨 미키토 지음 /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펴냄
"바다 냄새, 수런거리는 바람, 겨울의 날카롭고 차가운 공기,
그 전부를 느끼고 싶어요. 아까우니까."
불치병, '글리오블라스토마'라는 악성 뇌종양으로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폭탄이 머리에 들어 있는 '유가리 다마키'. 생에 바람을 붙잡고 싶어 하는, 파도 소리는 죽음을 향해가는 리듬 같아 싫어하는, '유카리'라 불리고 싶어 했던 여인.
죽음이 지배하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완화 의료에 의존해 생을 살아가는 환자들이 있는 가나가와 현 하야마곶 병원에 유년시절 아버지의 부재로 마음에 폭탄을 안고 사는 '우스이 소마'가 지역 의료 실습으로 부임하게 된다.
생명의 존중과 삶의 의지가 내포된 문맥 사이에 인간애가 드러난다. '눈을 감으면 그린 그림이 눈꺼풀 안에 떠올라. 그럼 내가 그림 속에 있는 것 같아.'(p.34) 시한부라는 작은 새장에 갇혀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누구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하루의 '희망'.
'일정한 리듬으로 새겨지는 박동 소리, 유카리 씨가 살아 있다는 증거'(p.61)
일정한 간격으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죽음을 향한 카운트다운 같다며 두려워했으나 어느새 잔잔한 파도는 살아 있음을 느끼는 소리가 되었다.
누구나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폭탄'. 멈출 수 없는 카운트다운에 겁내기 보다 해야만 하는 일을, 앞을 향해 내딛는다. 유카리도 몇 달째 갇혀 있는 자신만의 새장에서 뛰쳐나와 닫힌 마음을 울음으로 토해 낸다. 미래를 향해, 현재를 향한다는 것. 지금의 순간,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인다. 두려움에 묶여 있던 파도 소리가 잘게 부서져 희망을 흩뿌린다.
한 달여의 실습을 마치고 히로시마로 돌아온 우스이에게 들려온 유카리의 죽음.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준비하던 우스이는 절망한다.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나 유산을 노린 친척의 압박에 두려움을 느끼고 외출을 거부했던 유카리가 홀로 외출해 시내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에 의문을 느낀 우스이는 떨칠 수 없는 의문에 직접 조사를 하게 된다. 자신이 알았던 유카리가 환상처럼 사라진 공간, 병원 관계자들의 눈속임을 알아채고 유카리의 당일 행적을 파헤쳐 가는 과정에서 새로 작성된 유언장을 소재를 찾게 된다.
유카리와 보냈던 그 시간이 결코 환상이 아니었음을, 자신의 머리에서 일어난 오류가 아닌 마음으로 부딪친 '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진짜 유카리를 찾아간다. 오렌지 짧은 머리칼에 항상 긍정적이었던 환자 '아시가리 유'가 진짜 유가리 다마키이고, 아사가리 유가 '아사가리 유카리'라는 것, 유가리 친척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눈속임이었음을 알게 된다.
우스이가 떨칠 수 있었던 아버지의 부재, 유카리가 깨트릴 수 있었던 실독증의 두려움은 서로의 사랑으로 물든다.
뇌동맥류라는 폭탄을 머리에 안고 사는 유카리는 우스이의 앞날을 위해 거절하지만 따스한 감정은 서로를 감싼다. 내일의 삶을 확신할 수 없는 유카리에게 전하는 진심, "그렇다면 오늘은 저와 함께 살아요. 당신의 폭탄을 내가 안을 수 있게 해주세요."(p.328)
"누구라도 내일까지 산다는 보장은 없다고.
누구나 폭탄을 안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그 폭탄에 겁을 먹으면 아무것도 할 게 없다고.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