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복
김준녕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 김준 지음 / 꿈공장 플러스 펴냄


[나무가 쓰러진 자리]
꽃이 되고 싶었다. 견뎌온 세월만큼 무게를 안은 꽃이 되고 싶었다. 나무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기에 화려하지 않으나 본연의 모습을 품은 할미꽃이 되었다. '엄마'의 시간이 나의 삶에 깊게 뿌리내려 켜켜이 쌓인 무게만큼 엄마의 꽃을 보듬었다.
'나는 엄마를 향해 사실은 나를 향하는 모진 말들을 외쳤다.'(p.21)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며, 미안함을 위로로 되돌려 주는 엄마의 온정이 꽃잎이 되고 깊은 헤아림이 꽃술이 되어 곁에 남았다.

[먹다]
최상위에 군림하며 생태계의 파괴와 혼란을 야기한 인간의 배타적인 행태에 대한 일침을 살고자 하는 본능과 살아가는 욕망으로 그려내고 있다. 파괴로 허물어지는 것을 견디다 분노한 자연의 반란으로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이 드러난다. 생존을 둘러싼 지배층을 향한 피지배층의 울분이 쏟아진다. 혼란을 틈타 인간의 두려움을 파고드는 종교는 순수한 의도를 저버리고 욕망의 비수가 되어 상처를 남겼다. 
누군가의 죽음을 딛고 나의 생을 세운다. 좌절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욕망.
'나는 자연의 무서움과 인간의 두려움을 보았습니다. 또한, 보았습니다. 다르지 않은 그들의 심연을.'(p.61)

[주변인들의 주변인]
'남들이 판단하는 게 아닌 나만의 주체성'(p.75) 그 말이 지닌 책임이 무겁게 짓눌러 자유 의지를 표방한 주체성이 무너진다. 군중에 갇혀 떠돌며 배설되는 시선에 무뎌질 새 없이 덧 그려지고 덧붙여져 짙은 그림자를 키워나간다. 결국 스스로의 죽음으로 향한 주체성에게 나지막이 뱉어내는 말 "이 빌어먹을 주체성"(p.88)
빌어먹을 주체성을 빙자한 무수한 소란이 누군가에게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여과되지 않은 채 상처를 후벼파는 소란을 몸서리치며 경계한다.

[언더]
'몸이 시들기 시작하면 마음이 더 빨리 시들어 떨어져 버리거든.'(p.98) 통증이 만연해 아프지 않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끝'의 끄트머리에서 쉼을 갈망하는 순간에 반추해 보는 삶의 궤적. 외면의 두려움을 떨쳐낸 내면의 기억.
비로소 깊은숨이  모인 태고의 온기를 품은 빛의 시작. '최초로 살아있다는 게 행복한 기억.'(p.115)의 순간,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p96)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번복]
모른다. 결국 아무도 모른다. 어디에나 있는 '죽음'이 주는 영역은 가볍지 않지만, 아무것도 모르기에 적정선으로 나눌 수 없다. '상실 없는 성장은 없다'(p.137)라는 문장에 죽음을 위시한 삶의 무심함이 다가온다. '존재'가 '무'로 번복되었을 때 누군가에겐 흘러간 시간이 나에게는 정체되어 부딪친다. 선택의 오류가 가져온 번복은 파괴로 깊게 남는다.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무심한 현실이다.

[서쪽으로 가려던 남자는 동쪽으로 갔다네]
정체성을 판단하고 나누어 결정짓는다는 것은 관점의 차이다. 한정된 시각으로 구분하기에 삶은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무수히 많은 오류를 반복하고 타인의 삶을 재단한다. 나조차 '나'를 올바르게 규정할 수 없는데, 누구를 판단할 것인가. 
인생을 나아가는 발걸음을 멈춰 그대로 서서 돌아본다. 닿을 때까지 쫓아가는 발걸음을.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내일 또 만날래요?"(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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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재학 중인 작가 <김준녕>의 단편 소설 [번복]은 짙은 가을에 어울린다. 기억을 유추하며 다다른 죽음이 또 다른 생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어디서나 존재하는 '죽음'은 각 주제의 바탕이다. 아름다움, 욕망, 주체, 정체성, 상실이란 이름으로 다가온다. 

전공서적을 펼치고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고민하기에도 바쁠 매일, 작가가 표면에 드러낸 삶을 향한 다양한 줄기를 품은 죽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문장 하나, 극의 표현에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초연하게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 풀어헤친 머리가 바람에 흐느껴도 잡을 수 없는 시간이 있다. 복잡한 내 마음과는 다르게 문득 바라본, 블라인드 끝에 걸친 햇볕 한 자락이 오히려 초연함을 품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산다는 것"

책의 첫 장을 펼치면서 뮤지션 <짙은>의 음악을 들었다. 생각이 그러했는지 문장에 홀렸는지 자연스레 플레이한 <짙은>은 책 말미 '작가의 말'에 다다를 때까지 함께 했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자주 들었던 노래에 <짙은>이 있어서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동질감. 
상실을 딛고 일어선 성장을 바라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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