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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뤼미에르
후 샤오시엔 감독, 아사노 타다노부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이 영화에 대한 소식을 접한 건 신문에서였다. 카페 뤼미에르. 카페에 관심이 많았던 내 눈길이 멎었고 일본인의 일상을 그려냈다는 소식에 호기심이 생겼다. 한창 일본어에 빠져 애니와 영화와 드라마를 봐 제끼던 나날 중 어느 하루였다. 사실은 '마니아엔 특별한 일반 관객엔 지루한'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왠지 품격높아보이기 위해서는 특별한 영화라고 생각해야하나,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허영심에 충만한 성격.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셴 감독이 만들었다고 했다.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영화라고 했다. 중국어 제목은 '가배시광'으로, '마음을 안정시켜 앞으로의 일을 준비하는 평온한 한때'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리고 2004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었다. '모라이나키'라는 노래로 유명한 (그저 나만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노래는 굉장히 취향이었다.) 히토토 요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건 나중에 팜플렛을 보고 알았다. 너무 놀랍고 반갑고 신기해서, 그녀를 좋아하는 의동생에게 냅다 전화를 걸어 떠들어댈 정도로 기뻤다고 해야하나.
사실 난 감독도 배우도 잘 모른다. 그냥 영화의 스토리와 분위기를 보고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유명한 감독이 만들어서 떴니 어쨌니 그런 내용엔 별 관심이 없다. 누가 등장해서 대박이니 어쩌니 이런 이야기에도. 그런 부분들을 잘라냈다. 그러니 남은 건 일상을 그려낸 잔잔한 영화라는 것. 그리고 그게 마음에 들었다.
마음을 결정하고 나서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상영을 하는 종로의 하이퍼텍 나다를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이 영화가 아주 마음에 든다. 그런 결론에 영향을 미친 건 하이퍼텍 나다의 조용한 분위기에도 있음을 미리 언급해둔다. 밖엔 평화롭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적은 수의 좌석, 한쪽 벽면이 탁 트여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정원이 드러나고, 같이 보는 사람은 나까지 열다섯명 즈음. 그런 평일의 오후였다.
그녀는- 여주인공은 장면의 각도에 따라서 특이하게도 20대로도 10대 후반으로 보였다. 남주인공은 어디서 많이 본 듯 익숙하면서도 일본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주변 인물들은 튀지 않았다. 중심이 되는 소재는 지하철과 거리, 사람들.
살짝 졸리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와 당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이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내 성격상 당연했던 것일까. 그렇지만 그만큼 잔잔하게도 흘러가는 일상이었다. 그 거리, 그 웃음, 그 사람, 그 선로, 그 책, 그 그림... 임신했고, 그렇지만 결혼할 마음은 없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언급한다거나 신경쓰이는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찾아 읽는다거나 취미로 지하철의 소음을 녹음한다거나 배가 아파서 주저앉아 아픔을 참는다거나, 그런 건 어디에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정말 어이없달까 새롭달까 보면서 살짝 웃었다. 여주인공 요코가 지하철을 내려서 걷는데, 화면은 그걸 멀리서 잡고만 있다. 다른 사람들의 옷차림과 걸음을 구경하느라 시선을 잠깐 돌린 사이에, 어라, 여주인공의 모습을 놓쳤다. 당황해서 찾고 있는 날 깨닫고는 웃어버렸다. 보통의 카메라는 주인공을 쫓아가는데, 난 무슨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주인공을 찾고 있나. 그게 또 색다른 것일까.
이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히토토 요가 부르는 주제곡 히토시안(一心案). 나레이션으로 시작하고 중간에도 다시 나레이션이 들어가는 노래인데 노랫말은 중국어와 일본어가 섞여있다. 그녀다운 비음과 목청으로 이루어진 좋은 노래다.
그리고 예약 주문 버튼을 보면서 생각한다. 나는 이 DVD를 얼마나 볼까. 내 일상에 힘겨워하면서 이들의 일상을 찾아볼 수 있을까. 하지만 단언한다. 만약 사고 나서 한번도 보지 않는다 해도, 소장할 가치는 충분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