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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철학 - 이진우 교수의 공대생을 위한 철학 강의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평점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4차 산업혁명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10년 후 4차 산업혁명의 미래', '어린이를 위한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이야기’.
'4차 산업혁명'으로 찾아본 최근 출간 도서 검색 결과입니다. MB 정부의 ‘선진화’, ㄹ혜 정부의 ‘창조경제’ 같은 만능 수식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습니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군요.
도서 검색 결과를 다시 죽 훑어 봅니다.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살아남기', ‘미래', '어린이를 위한’. 뭔가 편해 보이진 않는 제목들입니다.
제목만 봐도 마음이 급해지는.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면서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 초래된 폭발적인 변화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출현하는 것을 산업혁명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특히 인공지능, 로봇, 사물 인터넷, 3D 프린팅 등의 기술 혁신으로 촉발될 4차 산업혁명은 속도(Velocity-기하급수적 속도 전개), 범위와 깊이(Breadth and Depth-‘무엇을 어떻게’ 뿐만 아니라 ‘누구인가’까지 포함), 시스템 충격(Systems Impact- 국가, 기업, 사회 전체 시스템 변화) 모든 면에서 이전의 산업혁명과도 구별되는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라고 합니다만 위 문장의 그 어떤 용어들도 쉽사리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검색해서 찾아 봤습니다만 귀찮아 집니다.
"에이, 내가 이거 뭘 다 알 필요가 있나. 앞으로 쓰게 될 거니까 어떻게 잘 쓸 줄만 알면 됐지..." 하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학기술에 의한 변화에 왜 적응하여야 하는 건가, 그렇지 않으면 나는 발전하지 않는건가? 인간의 발전은 과학기술 발전을 잘 따라가면 얻어지는 건가? 그렇다면 과학기술 발전이 인간의 발전인건가? 아니 그 전에 발전이란 무엇이고 진보는 무엇인건가.(거의 20년전에 나왔던 노래 가사 비슷해지네요..)"
이진우 교수의 공대생을 위한 철학강의 '의심의 철학'은 바로 이런 질문과 사유하는 자세,
동사로서의 '철학함'에 대한 책입니다.
의심의 철학 - 정답을 의심하라: 과학의 시대, 철학의 쓸모
"학생들에게 철학적 지식을 전달하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모든 철학적 사유는 자신이 갖고 있는 구체적 삶의 문제로부터 출발한다는 전제 아래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의문과 질문을 구성하도록 유도했다. 처음에는 어렵고 곤혹스러워하던 학생들이 자신만의 질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다.”(머릿말, 8페이지)
'의심의 철학’은 포스텍 석좌교수인 이진우 교수의 철학 사상 논쟁 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입니다.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고 정답이 있다’는 과학과 기술 시대의 ‘신앙’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는 동사로서의 ‘철학함’을 다루고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철학이며, 과학의 시대에 철학의 쓸모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사르트르, 베냐민, 포퍼, 아렌트 등 정답의 시대를 성찰한 ‘의심의 학파’ 인 위대한 현대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만 머리말에서 밝힌 것처럼 이 사상가들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사유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지식'이 아니라 '지성'이라는 뜻인 듯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의 여파로 2030년이 되면 현재 총 노동시간 중 최대 49.7%가 자동화 될 것이고 100% 자동화로 대체되는 직업은 0.3%, 20% 이상 자동화 가능한 직업은 86%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대변혁에 대해 주요 변화동인을 분석하고 개인 및 사회 구성 단위의 전략을 수립, 시행하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다만, 삶에 대한 자신만의 의심과 질문없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강박에 의해 지식과 정보만을 습득하고 활용하려는 노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유용한 지식도 몇년 후에는 별 효용가치가 없는 정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과학기술이 초래한 상황에 대한 주체적인 관점을 확립하고 능동적으로 수용할 때 비로소 자신의 의문과 질문을 구성할 수 있고 삶의 의미에 대한 탐색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동사로서의 ‘철학함’의 의미이고 ‘의심의 철학’의 목적이겠지요.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책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철학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철학적 명제를 확립한 데카르트의 사유 방식은 '방법적 회의'라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진리라 여겨지던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뒤엎어 버리고 첫 번째 기초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철저한 의심 속에 자신을 내던지고 사유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의심하는 도마(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카라바지오]
두께에 반해서 샀지만 몇번 들춰보고 책장에 꽂아둔 '서양미술사'라는 책에서 봤던 것 같은 그림입니다.
서양미술사에서 바로크 시대를 열어젖힌 화가이자 바로크의 대표적인 예술가의 작품이고 의심하는 사람들, 비천한 사람들의 나약한 믿음을 어둠으로 상징화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나약한 믿음을 극복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는 설명과는 상관없이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제가 느꼈던 것은 '잠깐, 한번 찔러봐도 돼요?' 하고 답도 듣지 않은 채 손가락으로 푹 찔렀을 것만 같은 생동감과 묘한 쾌감이었습니다.
의심하지 않아야 할 것도, 질문하지 않아야 할 것도 없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철학적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읽었던 지라 각 철학자들의 핵심명제와 사유가 머리에 들어오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서평...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소감문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책 후면 표지에 써있는 문장 하나는 가슴과 머리에 남기고 몇번 반복해서 읽어보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올바른 질문을 제기할 때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