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이 책이 인물전기를 다루는 평범한 역사소설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마음에 두지 않고 있었다. 흔히 보아왔던 언제 태어나고, 무엇을 하다 어떻게 살았는지, 때로는 너무 쉽게 쓰여지는 그런 소설들이 싫었다. 책을 보고도, 하필이면 왜 이순신 이야기를 썼을까. 우리는 너무도 그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데...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야 이 책이 평범한 역사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모든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지 않고, 오직 시간의 한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역사 서술 보다는 상황과 심리묘사에 큰 중심을 두고 있다.

다행히도 평범한 이야기 일꺼라는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작가의 묘사는 몹시도 치밀하고 살아있는 느낌이다. 이순신이 앞두고 있는 절망감. 그 절망을 깊게 들이쉬는 숨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꼭 칼날처럼 날이 서 있다. 단 한번에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전쟁터 앞에서 작가의 심리 묘사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작가에게는 역사서술은 별 의미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목적이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오히려 죽음을 앞둔 이들의 두려움, 어디인지도 모르는 적들을 앞에 두고 삶과 죽음을 오가는 이들의 고뇌를 담고 싶었으리라 생각해본다.

때로는 지루하고, 가벼운 요즘 소설들 속에서 오랜만에 무게감있는 소설을 만났다. 꾸밈이 없고, 간결한 문체지만, 그러기에 작가의 눈은 오직 인간, 그 마음속을 꿰뚫는데만 집중한다. 오랜만에 제대로 읽었고, 문학상을 받을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이, 황량했던 전쟁터의 참흑이 담겨있다. 섬의 함락과 백성들의 도륙. 시체가 산을 이루고 사람들은 죽음앞에 무덤덤해진다. 삶과 죽음이 교차되고, 산다는 것. 살기 위해 구차하게 먹을 것을 집어넣는 이들의 비애가 담겨있다. 백성들은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한줌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버리는 관리들과 소인배, 무기력한 군주. 부하의 목숨을 거래하는 장수들. 그런 인간들의 모습이 읽는동안 내내 마음을 짓눌렀다. 변한건 없구나,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사람이란 제 한 목숨 살기 위해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짓도 하는구나 씁쓸함을 느낀다.

책은 덮었지만 이순신이 남겼던 고뇌는 마음 속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가볍지 않다. 결코 가벼이 쓰지않고 글은 강인하고 날카롭다. 그래서 마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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