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생각의 출현 - 대칭, 대칭의 붕괴에서 의식까지
박문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뇌, 생각의 출현>의 내용은 대부분 무미건조한 이공계 전공 교과서 같은, 

과학적 사실들의 무한 나열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라 원래는 일반독자들의 관심도가 굉장히 낮았을법한데 

'올해의 책' 등으로 선정되면서 출간 당시 과학서 치고는 나름 반향을 얻었던 책입니다.


저자는 자연과학이나 뇌과학 관련 책을 꾸준히 읽어온 다독가이나

전공 및 현재 하는 일을 포함하여 이 분야를 체계적으로 공부한건 아닐 수 있겠단 생각은 살짝 듭니다.

그러나 뇌과학 이론을 별도로 공부하지 않은 이상 본서의 이론적 내용을 비판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어서

가볍게 인상적이었던 내용들만 기록으로 남겨봅니다.


○ 서문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결국 <인간은 '뇌'를 바탕으로 매우 복잡하게 설계된 '기계'>라는 것이고

인문서 혹은 소설 대비 과학서가 지니는 핵심 장점은 또렷하게 살아 있습니다.

저자 또한 서문에서 

 - 대다수 사람들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가슴속 흔적으로만 간직하고 문학적 우주관에 만족하면서 평생을 지내는데

문학적 밤하늘은 아름답지만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하며 

'핵융합하는 별'은 '어린 왕자의 별'보다 더 오래 어둠을 밝힐 수 있다

는 굵직한 문장으로 과학서의 의의를 강렬하게 각인시킵니다.


○ 19장. 꿈꾸다, 뇌와 꿈

이 장에서는 뇌과학 기반에서 바라본 꿈의 실체가 명료하게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앨런 홉슨의 해석에 대부분 의존)


꿈의 주요 특성인

1. 시공간의 맥락 붕괴 2. 반성적 사고의 결핍 3. 최근보다는 장기 기억 위주 4. 대부분 시각 이미지...

꿈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일단 프로이트와 융이 익숙한 이름이긴 합니다.

하지만 특히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체계적이라기보단 인간의 상상력과 사유에 기반한 자의적 해석에 가까웠고

20세기말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꿈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제는 과학적인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이 장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아직도 <꿈의 해석>에 갇혀있다면, 이제는 정말 '꿈'에서 깨어나야 할 때


○ 20강. 현실 너머를 깨닫다, 뇌와 초월의식

여기에서는 명상 등 자아가 사라지는 종교적 초월현상 관련 기술이 인상적입니다.

불교tv에서도 강의를 했던 저자는 제행무상-제법무아 같은 순수한 인식 상태, 

즉 종교적 체험에 대해 양쪽 두정엽에서 자극이 차단되어 공간 시간 자아가 사라지고

오로지 순수한 인식 상태만 남는 상태라는 뇌과학적인 설명을 곁들여줍니다. 


○ 21강. 창조적으로 생각하다, 뇌와 창의성

'1만 시간을 공부하라, 그러면 길이 열릴 것이다' 라는 <아웃라이어>의 주장에는 찬반이 꽤나 갈립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모두가 창의력을 외치는 시대.


저자는 창조력을 발산시킬 수 있는 근간으로 

뇌의 5%밖에 사용하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불확실한 입력'의 출력물이자 구원타자 성격인 '느낌'과 더불어

'정보의 양'을 제시합니다.

정보의 양이 창의성의 질을 바꾼다는 예로 정약용을 예로 드는 것도 흥미로운데 

기본적으로 충분한 학습량이 있어야 소위 유레카, '번뜩임' 또한 가능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예전부터 천재적인 발상을 위한 전제로 충분한 학습량이 필요하다고 보는 관점이지만

이 넓은 세상엔 너무나 독특한 존재들이 분명 있기에 무조건 그럴까?에 대해선 은근한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천재는 정말, 머리보다 노력인걸까요? 


○ 24강. 자발적 대칭 파괴로 생각이 진화하다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에서는 우선 

자기주도적이고 자발적인 학습을 해온 이들이 유연한 사고를 가진다는 내용이 가장 와닿습니다.

특히 대학교 이후 학습이 없다면 '학습 기억'보다는 '신념 기억'의 비중이 올라가면서 

자기 생각만 맞다는 고정관념에 휩싸인 '꼰대'가 되기 쉬워진다는 문단에 강렬하게 공감합니다.


추가로 학습 주도형 인간이 되기 위해 제시한 여러 조건들 중 마지막, 

양을 질로 바꾸는 수 천 권의 책이라는 목표량이자 임계치를 채우되

양질의 정보와 양질의 책을 선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에도 크게 공감합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게 훌륭한 정보인지 가려내는 능력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기에 

저자의 말대로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는' 것이지요.



과학서들을 읽을 때마다 자연과학 분야 관련 지식 부족에 한계를 느끼곤 하는데

인문과학서 및 자연과학서 간의 적절한 배합은 필수적이고 

이를 통해 앎의 즐거움을 한 층 깊이있게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추가로, 이런 과학적 내용들을 토대로 수준 높은 SF작품들을 접하면 독서의 재미가 한결 배가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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