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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 세상을 바꾼 컴퓨터 천재들 (무삭제판)
스티븐 레비 지음, 박재호.이해영 옮김 / 한빛미디어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해커'를 다룬 책은 굉장히 드물 뿐더러 대중적 인지도 및 관심 또한 낮은 편입니다.
언론보도의 악영향으로 '해커'란 단어에 대한 인상은 아직까지 범죄자 수준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컴퓨터가 우리의 삶에 미친 지대한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해커들의 세계가 대중들에게 이렇게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의외죠.
<해커스, 세상을 바꾼 컴퓨터 천재들>은 베일에 싸인 해커들의 세계와
그들의 사고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대단히 흥미롭고도 의미 있는 책입니다.
본문은 이들이 활약한 20세기 중후반, 1950~1980년대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1부. 진정한 해커> 캠브리지 : 50년대와 60년대 에서는 MIT 연구실에서 컴퓨터가 처음 생기기까지의 배경을,
2부. 하드웨어 해커> 북부 캘리포니아 : 70년대 에서는 지금은 간단히 주문하면 바로 받아볼 수 있는 하드웨어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소리없는 노력을 통해 어렵게 탄생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3부. 게임 해커> 시에라 : 80년대 부터는
컴퓨터가 게임을 통해 본격 '기업', 하나의 '산업'으로 부상하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특히 초기 컴퓨터 체스대전이나 인공지능 채팅, 핀볼기계를 대체한 조이스틱 게임의 등장,
갤러그의 전신인 스페이스워부터 미스테리하우스, 모든 게이머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던전앤드래곤 및
리처드 개리엇의 울티마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초기 게임들의 등장과정은 대단히 재미있게 다가올 것이고
팩맨 관련 저작권 분쟁 또한 흥미롭습니다.
최종 4부. 마지막 진짜 해커> 캠브리지 : 1983년 후반부 후기에는
청년 시절 해킹에 푹 빠져 살았던 각 인물들이 현재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의 현황 혹은 짤막한 인터뷰가 담겨있는 부분이 아주 재미있게 읽힙니다.
이 책은 해킹의 역사를 담고있긴 하지만 저자가 말하듯 공식 역사서는 아닙니다.
또한 대단히 의미있는 역할을 수행했어도 사교성이 떨어지는 대부분의 해커들은 은둔자의 모습을 보여왔기에
본문에 나오는 숱한 인물들의 이름은 대부분 생소합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MS의 빌 게이츠나 애플의 두 스티브 등과 달리 본인들을 알릴 생각조차 하지 않은 이들 또한
진정한 '슈퍼 히어로'이자 '마에스트로'였음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 같습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괴짜인 이들의 기행은 정말 가지각색인데 재미있는 몇 가지를 소개하면
1) 피터 샘슨이 동아리에 기고한 '프로그래밍 詩'
2) '장 본 물건 옮기는 일 좀 돕고 싶어요?'라고 물을 때마다 거부하는 남편에게 분노한 아내가 따지자
'물론 나는 돕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이 도와달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지요' 라고 대답한 선더스.
프로그래머에게는 질문의 맥락보다 질문의 내용(코딩)이 중요해서
구문 입력이 잘못되면 프로그램 회로가 돌아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 마지가 질문의 오류를 고친 후에야
선더스가 자신의 머리라는 회로를 통해 프로그램을 정상적 성공적?으로 돌릴 수 있었다는 것ㅎㅎ
- 어떤 면에선 리걸 마인드가 연상되는 부분
3) 담배연기를 막으려고 중국 식당에 직접 만든 선풍기를 들고 가서 흡연자 쪽으로 연기를 점잖게 되돌려보내는
유쾌한 TMRC 해커들의 모습과 '새콤달콤 쓴 멜론' 에피소드
4) 게임이 끝나면 프로그램이 점수를 평가하는 논평을 내놓는데 BOA 사람들이 대출한도액을 논하러 오는 자리인데도
'완전 멍청함' 같은 멘트가 나오도록 코딩할 정도로 초기 스타트업들이 순진/순수?했었다는 점(애플 워즈니악)
5) 온라인 시스템즈의 뛰어난 개발자이자 젊은 억만장자였지만 연애에 있어서는 완전 먹통이자 소위 '대마법사'였던
존 해리스의 총각딱지 떼주기 프로젝트 등은 절대 놓치지 않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초창기 순수하고 열정이 가득했던 해커들이 공유했던 '해커주의'와 '해커윤리'도 인상적인데
현대에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가장 제대로 인정해주는 국가인 미국에서
대다수 해커들이 각종 프로그램들과 정보를 오픈소스로 무한히 공유하고 싶어했다는 건 은근한 아이러니입니다.
여기에는 10대의 어린 나이일 때부터 OS의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간파하고
영리성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이를 통해 결국 대성한 빌 게이츠의 영향이 제법 크겠지요.
MS는 IBM과 더불어 프로그래머들로부터 수많은 비난을 받지만
소프트웨어라는 무형자산에 대한 대가 지불 없이 개발자들의 순수한 열정에만 의존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기에
전 당시 빌 게이츠의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편입니다.
<해커스, 세상을 바꾼 컴퓨터 천재들>라는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교과서에 정규과정으로 편성되는 등 일반상식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음악 혹은 미술 등의 역사와 달리
해커들에 대한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수면 아래 잠기고 묻혀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컴퓨터가 현대인의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MS, 애플, 구글, 페이스북의 대표 몇몇을 제외하면 우리에게 너무 덜 알려진 게 아닐런지.
이는 교과목을 그저 열심히 공부하는 공부기계(tool)들과 달리 해커들은 해킹이라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을 뿐이고
또한 영리보다 무한한 공유를 지향했던 초창기 해커들의 성향 상 대중적 인지도에 애초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겁니다.
하루종일 컴퓨터와 씨름하는 괴짜들은 불과 50여 년 만에 이 세상을 완전히 변화시켰고...
가상세계의 마법사들이 일궈낸 이 놀라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결국
거인의 어깨에 걸터앉아있는 소소한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