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쓰고 '나는 꼰대다'라고 읽는 잉크 묻은 종이에 대한 답변.


제목이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지라 작년 11월 출간되자마자 읽고 뒤늦은 후기를 남기네요.

요즘은 거시적인 책과 미시적인 책을 번갈아가며 읽는 편인데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제가 현실적인 책을 찾아보는 이유에 잘 들어맞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단 본서는 수많은 ‘지방시’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대단히 차분하고도 정돈된 어조로 기술해나가기 때문에 

제3자 입장에서 봤을 때 고발서 성격은 아닙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관계자들은 광분했겠지만.

작년 11월에 읽을 때 자의든 타의든 학교를 오래 다니진 않겠구나... 어렴풋이 생각은 했어도 

그 시점이 바로 출간 다음 달이 될 줄은 몰랐네요. -_-

아마 저자는 이 책을 펴내면서 이미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여기 나오는 여러 에피소드 중에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많고 그 외 저자가 ‘안 적거나 못 적은’ 내용도 꽤 있겠으나

당장 제 주변만 둘러보더라도 본문에 담긴 내용 못지않은 사례들이 많아서 

오로지 본인만 겪고 있는 특수한 상황을 지나치게 과장한 거란 생각은 안 듭니다. 

시간강사로 살아가기 힘들다는 건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직간접적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


코레일 등이 적자 공기업이라고 해서 그 구성원들이 못난 게 아니고

거래소 같은 흑자 공기업의 구성원들이 잘난 게 절대 아니듯 

기업이 아닌 학교 또한 마찬가지로, 특정인의 소속/처지와 실제 역량은 분명 다릅니다.

하지만 갑을관계·서열짓기 문화가 만연한 국내 대다수 영역에서 지위가 한 번 고착화되면 지속성이 강하므로

안정적인 단계에 진입한 후에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생각(착각)하기 쉽습니다.

특히 한 번 그 자리를 얻고 나면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이 차고 넘친다는 문제를 안고 있지요...

뛰어난 시간강사와 교수 사이의 능력차보다 그 '한 끗 차'가 빚어내는 현실적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전 학부 때 인문계열 소속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지금은 아예 다른 분야에 몸담고 있지만 

한 때 인문학 계통 석박 과정으로의 진로 변경을 진지하게 고려했던 사람으로 남의 일 같지가 않네요.

결국 전 '현실을 너무 많이 쟀기 때문에' 커리어패스를 인문학 쪽으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교수직을 얻을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데다, 만약 교수가 되지 못한다면 현실적으로 삶이 많이 힘들어지겠기에 

모 아니면 도, 1 아니면 0에 가까운 디지털적 결과가 부담스러웠거든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만약 그 길을 갔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짐작해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모든 인생은 각기 하나의 드라마이기에 ‘좋아하는 일을 그저 하라’란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다를 수 있고, 

만약 그 둘이 같으면서 현재 하고 있는 동시에 잘 풀리기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축복인 것이죠.

특히 학생시절 꿈꿨던 해당 분야와 일이 정말 상상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희망사항에 불과한지는 

그 업종에 진입 후 실제 겪어보면서 세부적으로 알게 되며 인간이라는 생명체에 주어진 시간은 

다양한 관심대상 모두를 직접 경험해보고 최종 취사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길지 않습니다. 



저자의 세부전공 및 해당 분야에 대한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등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으니 

능력에 대한 판단은 배제하더라도 본문을 통해 사회생활에 필요한 정치적 센스(?)가 다소 부족한 동시에 

상당히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정도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디어가 너무 잘 발달한 현대사회는 갈수록 마케팅이 중요해지고 있고 인문학도 예쁘게 포장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를 맞아

포장이 먼저인지 내용물이 먼저인지 모르겠는 이상한 가짜 인문학 약팔이들이 넘쳐나고 있는 요즘 세태을 보면

솔직히 이 사회에서의 생존에 불리한 스타일 아닌가 그런 생각마저 들었네요.

리뷰를 남길 경우 대부분 읽자마자 바로 적는 편이데 유독 이 책에 대해 뒤늦은 후기를 남기게 된 데에는

은근한 공감과 더불어 이에 부수되는 심적 불편함이 이유 아니었을까 합니다.


꿈을 찾으려다 비록 지금은 후회하고 있지만, 저자가 봄날을 맞이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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