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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 게임 키드들이 모여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까지, 넥슨 사람들 이야기
김재훈 카툰, 신기주 글 / 민음사 / 2015년 12월
평점 :
창업 혹은 IT에 관심있는 사람이든 게이머든 투자자든 우리가 놀이를 즐기는 '호모 루덴스'인 이상
독자를 막론하고 아주 재미있는 책이 나왔습니다. 제목부터 <플레이>
이해진, 김정주, 송재경 등 기재들이 등장한 시기는 한국 IT/소프트웨어 산업의 태동기로
이들이 일궈낸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한 책들이 하나씩 나오는걸 보면
이제 이런 신산업들도 본격 성인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규모를 갖춘 주요 게임기업들 중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시작하여
<바람의 나라>, <어둠의 전설>, <퀴즈퀴즈>, <택티컬커맨더스>, <크레이지아케이드>, <카트라이더>, <마비노기>를 비롯
수많은 히트작들을 선보인 넥슨과 그 구성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국내 게임회사들의 역사를 경영·경제적인 측면과 같이 살펴본다는 면에서
체급차는 있되 M&A에 있어선 거의 LG생활건강이 떠오를 정도의 회사 넥슨은 가장 적합한 사례겠지요.
그리고 주요 인물들의 특징을 잘 캐치한 수준 높은 캐리커쳐가 인상적인데다
각 장마다 만화를 삽입해서 명료하게 요점을 간추린 구성·전개 방식도 깔끔하고 좋습니다.
이해진 김정주 송재경 김택진 등이 전부 모여있으면서 한국 최초의 PC방이나 다름없었었던 카이스트 이야기부터
너무나도 익숙한 각종 게임들의 개발과정,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나타난 초기 경영 과제들,
그리고 개발자들 간의 협력과 불화, 이탈과 재합류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은
드라마보다 극적인 '실화'이기에 더더욱 흥미진진합니다.
단 한 줄에 불과했어도 <단군의 땅>과 <아크메이지>의 '마리텔레콤'이 나온 것도 반가웠구요.
이 책은 게임업계를 돌이켜본다는 의미 외 스타트업과 성장통, 조직관리 문제 등 경영 측면에서도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 조직관리 : 개방성과 시스템 사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스타트업은 초기엔 직급 호칭 결재 등등 답답한 모든 것들을 가볍게 넘기는 유연성이 있되
규모가 커질수록 결국 어느 정도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문제점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김정주 → 정상원 → 데이비드 리)
이는 벤처기업 대부분이 겪는 성장통이고 이를 슬기롭게 잘 헤쳐나가야 진정한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커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덩치가 커진 후의 시스템화로 인해 '검투사'와 같은 창의성과 혁신이 사그라들 수 있다는 난제도 있죠.
특히 게임회사 같은 곳일수록 이 둘간의 접점을 찾는 데에는 굉장히 많은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이고
본서에는 그간 넥슨이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 현재의 캐시카우와 미래사업 간의 갈등
당시 웹구축을 통해 회사 운영비를 벌어들이던 인터넷 사업부와 게임사업부 간의 충돌 문제는
비단 게임사만의 문제가 아닌, 성장동력을 준비 중인 모든 회사들의 공통 이슈입니다.
제 지인만 보더라도 현재의 캐시카우에 해당되는 본부에 배치되어 굉장히 고생하고 있는지라
미래 성장동력으로 준비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사업부에 대한 불만이 엄청납니다ㅎ
좋은 결과가 나올지 아니면 매몰비용으로 증발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 둘 간의 갈등을 잘 봉합할 수 있는지 또한 신규 사업을 준비하는 기업들을 지켜볼 때의 관전 포인트.
- 사업가/경영 vs 개발자/콘텐츠
김정주와 송재경이 이 두 가지를 대표할 단적인 인물인데
한국은 위로 올라갈수록 기술자보다 관리자를 지나치게 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넥슨 또한 개발인력 컨트롤에 한계를 보이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초기 직접개발한 작품들보다
M&A로 인수한 회사들의 게임에 의지하게된 것도 어느 정도는 사업가 위주 경영방식에 더 의존했기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결국 이 두 역량은 맞물린 톱니바퀴와 같아서 하나만 부각되면 부작용이 생기기 쉽고 상호 보완이 필요합니다.
송재경이 이탈한 초기 넥슨이 상당히 고전하기도 했고
반대로 송재경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엑스엘게임즈도 장기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처럼.
- 성과보상(상장 그리고 인센티브의 함정)
상장시점을 늦춘 김정주 회장의 판단이 결과적으론 엄청난 성공으로 귀결되었지만
구성원들의 경우 고된 업무 끝에 얻는 보상이 지나치게 작거나 늦으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매출의 3%라는 성과보상체제가 생긴 후에는
벤처정신이 사라지면서 배부른 잉여, 거품 같은 문제도 발생한다는건 조직관리의 어려움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 개성 강한 개발자와 개발부서들에 대해서는 수치 기반 성과보상체제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성과보상이 지닌 양날의 검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닐런지.
관련 내용이 생생하면서도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는만큼 놓치지 않길 권합니다.
- 부분유료화, '돈슨' 문제
게임을 즐기고 사랑하는 독자라면 아마 가장 관심있게 지켜봤을 대목.
넥슨은 국내 게이머들로부터 그리 좋은 평을 듣진 못하는 회사여서
과연 이 문제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으로 기술했는지 대단히 궁금했는데
본문 곳곳에서 나름 솔직하게 부분유료화의 문제점과 이것이 심해진 원인을 짚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슨'이라는 표현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경영진이 그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그리 와닿진 않았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야 비즈니스 모델의 신기원을 만났다며 마냥 좋아할지 몰라도
게임성을 끌어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바로 넥슨이 시작한 부분유료화 모델인지라...
넥슨이 진정 게이머들로부터 재평가받고 싶다면 다양하게 준비 중이라는 차기작들이
패키지 판매나 기간 정액제 등을 채택하여 현질로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가능할겁니다.
그런 차기작을 선보이지 않는 이상, 이 책에 기술된 관련 내용들은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 Next 넥슨, 그들의 미래
매출이 늘어나고 상장까지 완료한 이후 갈수록 조직이 대형화 관료화되어가는 것을 우려한 초기 경영진이
새롭게 '인큐베이터'에서 '컴투사'들을 양성하고 있다는건 나름 기대되는 소식입니다.
어떤 평을 듣더라도 타고난 사업가인 김정주 회장이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을 지니고 있는 기재임은 분명하고
바야흐로 넥슨이 대기업이 된 현재 닌텐도나 디즈니를 바라보면서 꿈꾸는 것들이
또 다른 시행착오들을 통해 구현될 수 있을지는 넥슨人들이 앞으로 내놓는 게임을 통해 판단할 수 있겠지요.
대기업이 된 후에도 TF 운영을 통한 '손드는 문화' 구현이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 지인들과 함께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시작하여 이제 굴지의 기업으로 우뚝 선 넥슨.
21세기 나날이 중요해지는 콘텐츠 지적재산권(IP)과 무형자산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이 회사가
앞으로는 어떤 행보를 보여줄까요.
국내 게임업계를 선도한 기업의 역사적 흐름이라는 퍼즐 조각을 잘 엮어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게임과 콘텐츠에 관심있는 모든 이들의 일독을 적극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