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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15년 3월
평점 :
국정 교과서 관련 논란으로 뜨거운 2015년 하반기.
많은 이들이 제작 과정 불참의사를 밝히는 등 국정 교과서는 거의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둘러보던 중 찬성이든 반대든 간에 자주 보이는 단어는 '올바른 역사교과서',
이 말을 보는 순간 살짝 실소가 나왔는데 전 이 표현이 '올바른지' 진정 모르겠습니다.
용어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의하지 않은 채 본론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 오랜만에 다시 찾아본 <역사란 무엇인가>
머리 염색조차 용인되지 않던 시절이 불과 20년 전이었던 반면
지금은 공중파 채널에 피어싱한 친구들도 별다른 제재없이 출연하는 세상,
살다보면 누구나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사회의 컨센서스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보편성'이라는 개념의 사회적 지속성이 의외로 낮다보니
'유효한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단어 선택은 대단히 깔끔하게 다가옵니다.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나름 최대한 대중적으로 풀어 쓴 본서의 핵심은
1) 역사적 사실과 이에 대한 해석~판단은 다르며
2) 역사의 해석은 분명 필요하되 터무니없어서는 안된다는, 즉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일겁니다.
'터무니없다'를 받아 들이는 온도차는 각자 다르다는 문제는 살아있지만~
이 좁은 국토 안에서 내가 옳네 네가 그르네 옥신각신 따져대는 이슈를 떠나
제3자나 전쟁 상대국 같은 당사자가 보더라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으로 기술되어야
진정 균형잡힌 역사라는 생각입니다.
한국 최고의 위인인 이순신 장군에 대한 내용을 (합리적인) 일본인이 읽고도 수긍할 수 있어야
비로소 세계적인 보편성이 확보되죠. '성웅 이순신 장군' 같은 표현은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문구입니다.
집필의도가 훤히 보이는 국정 교과서 같은 단선적·단편적인 논점 외
'단일민족국가'나,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 같은 아젠다야말로 되짚어볼 필요가 큽니다.
아픈 부위 쿡쿡 찔러가며 민족주의를 굳이 끄집어내고 자극하는 행위 또한
굳이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포지션 못지 않아 보이는 건 마찬가지.
일단 근대 이전에 지금 같은 '민족'의 개념이 있기나 했는지부터 의문입니다.
추가로, 만약 그렇게들 좋아하는 대국굴기의 고구려가 한민족이라면 우리가 정말 침략만 받고 산 평화민족일까요.
고구려의 확장 과정 중 사라진 동북아 '민족들'이나 베트남 전쟁을 비롯
직간접적으로 우리게 대외 전쟁/침략에 관여한 내용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법서를 보면 늘 다수설과 함께 소수설도 같이 소개됩니다.
팩트가 아닌 해석과 판단의 영역에 있어선 다수설이라는 컨센서스가 있되 여러 소수설도 언급해주는 게 합리적이고
그런 측면에서 다른 시각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마련해주는 게 여러 모로 낫지 않을런지.
특정 아젠다에 우~ 하고 몰려다니면서 옥신각신 단순 이분법적인 다툼을 하고
사고의 대역폭 자체가 축소되버리는 상황이야말로 짚어봐야 할 문제 아닌가 합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현재와 과거가 나누고 있는 대화이다.
- 에드워드 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