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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5.7.8 - 창간호 ㅣ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새로운 문학잡지, 정말 어려운 도전입니다.
16명의 staff와 34인의 the contributors 총 50명이 참여했고 가격은 삼천원도 안되는 2,900원,
두 달에 한 번씩 삼천부?가 나가더라도 매출액은 870만원에 불과하듯
우연히 눈에 띄어 집어들자마자 든 생각은 '쉽지 않겠다'였습니다.
평론, 단편, 인터뷰 등이 담긴 잡지의 구성은 일반적인 잡지의 흐름과 유사합니다.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이나 노라조의 <니 팔자야> 뮤비 등을 다룬 내용도 있고 네임드 작가들의 단편도 있는데
소설, 평론보다 훨씬 재미있기 읽힌 건 창간호의 인터뷰.
커버에서 알 수 있듯 인터뷰 대상은 바로 천명관입니다.
도대체 뭐가 그리 부끄럽다고 사진찍을 때 앞을 못보는지, 항상 정면을 본다는 작가.
우주적인 작품 <고래>나 위트가 넘치는 <고령화 가족>을 읽은 분들은 작품에서부터 이미 느끼셨겠지만
자신에게 소명의식 따윈 없다고 말하는 그는 아주 솔직 담백합니다.
위선과 허영으로 가득찬 몇몇 네임드 가짜 작가들과 극명하게 대비될 뿐더러
출판사에서 창간호의 커버 및 인터뷰 대상으로 천명관을 원한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겠지요.
"한 작가의 삶에 이야기해보자. 문창과나 국문과를 나와 적당한 나이에 등단, 문장도 나름 개성있으면서 훌륭하고
평론가들이 심심하지 않게 이 시대의 징후를 포착할만한 단서들을 떡밥처럼 던져주기도 한다.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하면 매 시즌 빠지지 않고 주요 문예지 및 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다.
그러면서 단편집도 내고 문학상도 슬슬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커리어를 쌓고 대학에도 연결되어 강사도 병행,
어쩌면 대학교수로도 부임, 이후에는 심사위원으로도 본격 활동하면서 존경받는 문단의 원로로 늙어간다.
근데,
그의 대표작이 뭐지? 하면 딱히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겨우 제목을 떠올려도 근데 그게 다였나? 라는 느낌이 든다.
이름은 드높지만 작품을 생각해보면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그것은 기획상품처럼 순전히 시스템이 만들어낸 작가이기 때문이다."
- 천명관 인터뷰 중 -
일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무슨 음대 교수가 리사이틀이라도 열었는지
연주회를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제자들이 '선생님' 주변에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선생님, 오늘 연주 들으면서 눈물이 났어요' 같은 시덥잖은 아양들을 들으면서 피식 웃은 기억이 납니다.
문단의 작가들이 등 뒤 엄한 선생님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은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이들이 작가의 문학적 성취와 지위를 결정하다보니 권위적 전근대적 시스템이 50년 넘게 문단을 지배하고 있어
아무런 예기 없이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습작들만 나올 뿐 아무런 발전도, 대중들의 호응도 없을 수 밖에요.
예술가/작가라는 게 기본적으론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려는건데
자의식 과잉까진 몰라도 남의 시선을 잔뜩 의식해야 한다면
출근을 안한다는 것 외에는 일반 직장인과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ㅎ
인터뷰 내용 중 국악계 무용계 등도 세상과 무관하게 대학을 근거로 존속하고 있을 뿐,
문학은 아직 시어머니 칠순잔치에 제자들 동원해서 공연을 시키거나 꽃다발로 구타를 할 정도는 아니니
아직 형편이 나은지도 모르겠단 말은 아주 우울한 얘기죠.
사교클럽도 아닌 밀교집단이 되어 정부에서 주는 창작지원금과 지원금 성격의 문학상 상금으로 생계를 꾸려야 한다면,
그래서 무엇보다 처신이 중요한 예술이라면 그게 예술가고 작가인지,
세상에서의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이미 50줄에 접어들었고 그간 많은 굴곡을 겪어온 인간이자 작가로서,
작가가 되려면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할 수는 있어야 하며
지난 십 년 간 등단한 작가 중 회사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작가가 거의 한 명도 없을거란 이야기,
그리고 되도록 선생님들이 지켜보는 가망 없는 단편생활을 해야 하는 문단 안보다는
바깥에서 작가의 길을 모색해보라는 말은 진정 '안습'입니다.
(설마... 그래도 열 명은 되지 않을런지 -_-...)
이너서클과 네트워크 문제는 어떤 분야에서든 만성 고질병이지만
최근 '유명한 선생님' 중 한 분은 만천하게 다 드러난 표절을 마지막까지 감싸고 도는 모습까지 보였듯
둘둘둘 얽혀있는 굴비 문제의 해결은 어렵습니다. 본디 부당할수록 자기들끼리는 똘똘 잘 뭉치는 법~
- 정치권력 같은 큰 영역에서의 이너서클이 궁금한 분들껜 <독재자의 핸드북>이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이런 소리 해봤자 결국 암 것도 안 바뀔 테고, 선생님들은 만수무강하실 테고,
나는 기껏해야 또 적이나 잔뜩 만들었겠지 쩝'
입맛을 다시는 치기따위 없는 50대 작가의 마지막 한 마디가 폐부를 콕 찌르네요.
새로운 문학잡지가 과연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지, 현실적으로는 회의적입니다.
그렇더라도 팔리지 않는 소설에 대해 소설가들이 비난받는 세상 속,
작가들을 위한 잡지를 만들겠다는 창간호의 멘트를 보며
가짜 선생님들의 빨간 펜에서 벗어나 쾌락을 위한, 독자를 위한,
아니면 작가 본인들이라도 그저 즐거운 놀이를 할 수 있는 신나는 '도끼'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