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 - 최고의 과학자 13인이 들려주는 나의 삶과 존재 그리고 우주
슈테판 클라인 지음, 전대호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는 과학 분야의 석학 13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주제에 대한 대담이 이루어지는 인터뷰 형태의 책입니다.

주로 현존하는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대담이 진행되지만 인류학자(제레드 다이아몬드), 행동경제학자(에른스트 페르), 

심지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의 가상의 인터뷰도 이루어집니다. 

 - 다빈치와의 대담은 그가 남긴 원고, 일기를 바탕으로 기술되어 단순 저자의 상상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본서의 특장점은 과학자 같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과 인터뷰할 때 

대부분의 인터뷰어가 상대의 지식에 어느 정도 함몰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비해

슈테판 클라인 본인 또한 과학자이기 때문에 동등한 상황에서 대담이 진행된다는 것.

따라서 상대방의 의견에 때로는 강한 반론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상호 반응이 이루어집니다.


시트콤 '빅뱅이론'이 과학자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잘 활용해서 히트했듯 

과학자들은 대개 괴짜로 여겨지고 일반인들에겐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상인데 

이 책에서도 화학자와의 첫 대담의 시작이

"교수님이 가장 좋아하는 분자가 있습니까?"  

"헤모글로빈이요. 바로크 예술처럼 화려한 분자랍니다." 입니다. 절로 웃음이 나오죠ㅎㅎ

그렇지만 13명의 대담을 보면 앎의 욕구에 평생을 바친 그들의 인생이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만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13회의 대담이 제각기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인상적인 것들을 아주 간략히 남겨보면

- 분자에서 읽어내는 시 -   아름다움에 대하여

처음 소개되는, 헤모글로빈을 열렬히 사랑하는 화학자 겸 시인 로알드 호프만은 

얼핏 다른 세계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인간이자 예술가로서 그의 감수성은

"아름다움은 긴장에서 나와요. 질서나 무질서 사이의 긴장, 단순함과 복잡함 사이의 긴장"이라는 표현을 통해 

유감없이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본인이 탁월하게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암호 해독의 마지막 열쇠를 풀어내지 못하던 괴짜 천재 앨런 튜링이 

일상적인 대화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결국 해결해내는 장면과도 오버랩되는 장면입니다.


-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 -   세계의 시작과 끝에 대하여

본서의 제목이 담긴 챕터로 우주론자 마틴 리스는 신이 우리를 만들지 않았고, 

우리가 어쩌다 우연히 생겨난 먼지같은 존재라고 하여 존엄하지 않은 게 아님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후반부 제레드 다이아몬드와 더불어 수백만의 인구가 인류의 진보된 기술문명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보는 그의 의견은 석학들 중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이들이 참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주네요.


- 기억하나요? -   기억에 대하여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온 질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신경생물학자 한나 모니어는 

비정상성의 매력을 언급하면서 '기억'이라는 현상을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세계적인 과학자인 대담자 대다수가 과학소설이나 SF영화 등도 즐겨본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후각으로 기억을 연상하는 유명한 보리수차 에피소드처럼 작가적 직관과 주관적 상상력이 

종종 과학자의 영감까지 자극한다는 건 과학과 문학 간의 은근하고도 오묘한 만남입니다.


- 머릿속의 타인들 -   공감에 대하여

우주도 흥미롭지만 아무래도 인간의 컨트롤타워인 뇌는 그 누구나 관심을 쏟을만한 내용이죠.

인간이 비슷한 타인을 보며 뇌에서 먼저 인지하고 반응한다는 '거울 뉴런'을 발견한 신경과학자 비토리오 갈레세와의 대담.

거울뉴런은 미드 <닥터 하우스>에서도 자주 활용된 소재이고 

우리가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열광하고 빠져드는 것 또한 거울뉴런의 활성화에 따른 일종의 공감입니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기 위해서도, 새로운 내용의 학습을 위해서도, 

궁극적으로 사회의 정반합을 위해 '공감능력'은 인류가 받은 최고의 축복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상대방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사디스트가 쾌락을 느끼며, 

따라서 공감과 이타심(혹은 도덕심)은 별개라는 그의 말은 공감 자체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경종을 울립니다.


- 진화의 여성적 측면 -   모성에 대하여

인류학자 세라 허디와의 대담에서는 

본인에게 양육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후 아기를 버리기도 하는 인간 어머니와 달리

장애가 있는 새끼도 열심히 돌보고 심지어 죽은 새끼도 안고 다니는 애틋한 랑구르 원숭이 관찰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인간이 과연 원숭이보다 더 '인간적'인지 '비인간적'인지, 헷갈리게 되는 내용인 동시에

세라 허디가 말하는 다양한 내용/주장들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갸웃거리기도 하게 되는 챕터


- 거울로 된 방에서 -   의식에 대하여

인도의 뇌과학자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은 인도인답게(?) 다른 과학자들과는 꽤나 다른, 

인도인 특유의 직관적 사고를 많이 보여줍니다. 

아기를 갖고 싶은 욕구가 지나친 여인에게 생기는 '상상임신'

거울을 이용해서 환상으로 환상을 치료하는 '유령 팔다리 절단'

탁자 위아래에 손을 놓고 쓰다듬는 실험 등 살짝 신비스러운 내용들이 많이 소개되고,

특히 '환생'이라는 대전제에 대해 두 과학자가 가지는 시각차에서는 각자의 문화적 기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13인의 과학자들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들은 각기 조금씩 다르고 

의식의 전이가 가능한가 등의 질문에서 의견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공통적인 한 가지는 다빈치를 비롯하여 그들이 열정적으로 앎을 추구했다는 사실입니다.

과학과 예술은 정반대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 책에 담긴 과학자들의 마음을 읽어보면 

무한한 지적 희구를 탐하는 이들의 예술적 재능 및 감성 또한 탁월하다는 데 공감하게 되지요.


무엇보다도 마지막 장에서 스티븐 와인버그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신이 창조했다는) 거창하고 우주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그 어떤 대본도 없이 무대 위에서 어슬렁거리는 즉흥배우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말은 많은 감상을 자아냅니다.


지적 탐구를 통해 인생에 대한 성찰을 일궈낸 이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우주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삶을 광대극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하고,

인간의 삶에 한 가닥 비극의 품위를 불어넣는다.

 -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초의 3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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