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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 예술의 전당에서 장애를 앓고 있는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하는걸 우연히 본 적이 있었는데
자폐증인 것 같은 작가가 그린 추상화를 보고 한 5분간 자리를 못뜬 기억이 납니다.
(작가가 자기 작품 옆에 보호자와 함께 있는 방식이더군요)
검은 은하수를 보는내내 게르니카의 우주적 버전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시에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지만 지금 그 그림을 다시 본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살 것 같네요.
장애를 핵심 소재로 다룬 대표적인 책으로는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그리고 얼마 전에 적기도 했던 정유정의 <두근두근 내 인생> 등이 있고
이외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같은 명화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신경학 교수이자 의사인 저자 올리버 색스가
임상사례 같은 의학적인 진단·처방 내용을 다루는 동시에
이를 단순한 차트기록이 아닌 일종의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특징을 지닌 작품입니다.
장애를 다루는 작품 중에는 그들을 이해하려 하거나 그들이, 또는 그들을 통해 사람들이
역경을 딛고 이 세상을 살아갔으면 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이 임상결과를 단순히 여느 다른 책들처럼 그들을 감싸안는 형태에 국한됐다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진 못했을겁니다.
다양한 장애 사례들 중 특히 본문 1~2부에 담긴 여러 에피소드에서
'상실', '과잉' 등을 바탕으로 그들의 내면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진행되는데
읽으면서 무릎을 친, 냉소와 인간애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에피소드 '대통령의 연설'은 감탄 그 자체였습니다.
매력적인 배우 출신의 대통령이 성우 뺨치는 감미로운 목소리와 능란한 화술로 연설을 하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즐거워하는 반면
수용성 언어장애 등 소위 언어상실증에 걸린 장애인? 에밀리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조금도 공감하지 않습니다.
"설득력이 없어죠. 문장이 엉망이고 조리도 없어요. 머리가 돌았거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요."
꾸민 표정 지나친 몸짓 등에서 드러나는 부자연스러움을 감지하는 그들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금새 들통나는 것이죠.
대통령 연설의 패러독스, 뇌에 장애를 가진 사람 외 대다수가
교묘한 말솜씨와 음색에 속아넘어가는 현실 속에서 그녀를 장애인으로 볼 수 있을까요?
종교를 믿지 않으면 화형을 당하거나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계란을 던지는게 당연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다른 이들이 틀린 게 아니라 그저 생각이 다를 뿐일 수 있음을,
심지어 일반인들이 그들을 이해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거꾸로 그들이 외눈박이 세상에 온 두눈박이일지도 모른다는 것임을...
의과학을 문학으로 멋들어지게 승화시킨 작가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정상일까요?
'인간은 기억 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닙니다' - '길 잃은 뱃사공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