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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문제를 서사의 중심에 둔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게 한겨레문학상의 특징이죠.
그간 읽었던 절반 정도의 역대 수상작 중 전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라는 작품의,
감성적이면서도 참혹할 정도로 처절한 문체가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동아일보 기자 출신 작가가 수상자인 <표백> 또한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지향점 없이 '표백' 당해버린 젊은 세대들의 '자살선언'을 다루고 있는, 대단히 논쟁적인 작품입니다.
누군가는 본문에 상당히 공감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내용으로 읽힐텐데,
아마 그간 올려왔던 책들 중 호불호가 가장 극명하게 엇갈릴 내용인 것 같네요.
(더군다나 본문 속 화자의 별명은 무려 '적그리스도'입니다. 자아가 강한 작가들도 어지간해서는 회피하는 용어를...)
상당부분 공감가는 내용도 있었고,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내용도 꽤 있는데
공감 55 비공감 45랄까요, 전 공감하는 내용이 살짝 더 많았습니다.
작가가 지칭한 20대~30대 초반 세대 내부적으로도 본문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릴 것이고,
가령 졸업생-재학생 간담회 중 하기 부분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저는요, 젊은이들 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뭣모르고 잘 속는 어린애들한테 이것저것 시켜봐서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고
되는 분야에는 기성세대들도 뛰어들겠다는거 아닌가요?
도전이라는 게 그렇게 수지맞는 장사라면 왜 그 일을 청년의 특권이라면서 양보합니까?
척 보기에도 승률이 희박해 보이니까 자기들은 안하고 청년의 패기 운운 하는 거잖아요."
"이름이 뭐랬지? 넌 우리 회사 오면 안되겠다."
그말을 듣고 나는 빈정대는 말투로 한마디 내뱉었다.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기성세대에게 어퍼컷을 제대로 날리는, 어떤 면에서는 매우 속시원한 내용일지도 모릅니다.
(소설 속 '대기업 재직자'가 재학생들에게 '도전정신' 운운하는 건 참 역설적이네요)
록 밴드를 하고 주먹을 날리던 이가 사회에 나와서는 가장 갑갑한 공무원을 하는 설정이나
국정감사가 끝난 뒤 룸에서 공무원을 접대하다가 폭발하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모난 돌이 되지 않기 위해 두루뭉술 어물쩍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 한국에서
이런 직설 화법은 환영하고 싶습니다.
공감을 받든 못 받든 그건 독자의 선택이고, 화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므로.
단 <표백>이 그저 어두운 면만 담은, 디스토피아적인 책은 결코 아니며
작금의 젊은 세대가 직면한 상황과 사회적 현실을
신랄한 어투로 파고든다는 명백한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책에서 지칭한 '표백'당한 세대들의 경우
나이나 사회경력 상의 차이는 6~7년이더라도 실질적인 격차는 10년 이상 나는게
저성장 시대의 현실입니다.
새마을운동 세대, 386 세대와 달리 C D E G I M P U 88만원 세대 등등등...
별의별 명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세대를, 전 '잉여'의 세대라 칭하고 싶네요.
작가는 젊은이들이 직면한 세상을 마릴린 맨슨의 노래제목처럼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 칭하는데,
저에게는 '그레이트 빅 엿'으로 읽혔습니다ㅎ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워낙 빠른 한국에서,
각자 살아온 환경이 너무나도 달랐던 각 세대가 과연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굶어보지 않고 독재정권을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하여 현 젊은이들을 나약하다고 치부하는 게
그저 자기가 경험해본 입장으로만 따지고 판단하는 '꼰대'에 불과하거나
어쩌면 대학교 오티에서 갓 입학한 신입생을 훈계하는 2학년생의 모습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젊은 세대들이 처한 상황과 그 내면을 이해하고 싶다면, 곰곰이 생각해볼 이슈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