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소한, 지독히 아득한
임영태 지음 / 마음서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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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소한, 지독히 아득한》의 책표지, 고요하게 내려앉은 밤하늘 같다.

사진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세로로 'ㄱㅗ도ㄱ' 철자에만 은박이 박혀져 있다. 고독. '살아가는 한 끝나는 일이란 없다.'​ 

소설 속 환갑을 막 넘긴 '나'는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 나의 부인도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편의점에서 일하며 오고가는 수 많은 사람들을 관찰한다. 장사가 잘 될 거 같지 않았던 한적한 도로변에 있는 편의점에는 아침에는 고등학생들이 새벽에는 화물차 기사들이 오고갔다. 아침시간이 되면 오후 근무자와 교대를 하고 집에 돌아온다. 바톤터치하듯 아내가 일을 나간다. 별다른 사건사고없이, 고요하게 물 흐르듯 화자의 일상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어느날 '나'는 치매에 걸린듯한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 상상은 끊기지 않고 쭉 이어진다. '상상은 잠에서 막 깨어나 떠올리는 꿈의 잔영들처럼 두서없으면서도 생생했다. 그리하여 장면이 바뀌는 순간순간 나의 가슴에 꽂히는 고통도 선연했다.. 내 어처구니없는 상상이 행여 말의 씨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를 초조하게 했다. (p.63)'

'나'는 아내가 있는 방문 손잡이를 잡으며 '교만했고, 의지는 약했고, 허튼 감상만 많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제발 아무일도 없기를 기도했다. 방문을 열었고 아내가 빙그레 웃었고 순간, 주전자에서 물 한방울이 노란색 장판위로 떨어진다.

그 순간을 묘사하는 글에서 장면이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의 천진한 표정이 '쇠스랑 같은 고단함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숨 쉬고 있는 것(p.65)'을 본다. 다행히도 화자가 상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환갑이 넘어 뒤돌아본 과거 속에는 먹고사는 일에 무심했던 '내'가 존재했고,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삶을 비하했고, 뭔가 더 큰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무슨 열망을 갖고 살지는 않았다. 이렇게 '나'는 이렇다할 목표도 없이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공원에서 삼겹살을 먹으면서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여자를 보며 생각한다.


"내 인생의 삼겹살은 무엇일까?

그것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는 그것이 있어서 살고 있는 내 인생의 내밀하고도 강렬한 욕망은 무엇일까? (p140)"

이 문장에서 책 표지의 '살아가는 한 끝나는 일이란 없다'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저그런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 지라도, 살고 있을지라도 어느 순간 자신의 삶에 대해 번뜩이게 되는 순간.

소설의 말미에서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화자는 종지부를 찍는다.

이 책은 소설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인데 일상을 묘사하는 글은 평범하지가 않았다. 흡인력있는 소설이다.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다, 살지 않으면 죽은것이고 죽지 않으면 살아가야하는 것이고.

문득 인생에 대한 시작점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같아서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다. 1차원적인 문제가 가장 혼란스러운 듯하다.

가볍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서평을 쓰면서 삶이란 '지극히 사소하면서 지독히 아득한' 문제들로 가득차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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