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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그녀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걸어다닐 엄두를 내지 못하는 8월. 입추가 지나도 여름은 여전하다. 무더위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책을 읽다보면 더위가 조금이나마 사그라드는 기분이 든다. 시원한 하늘색 표지를 가진 <4월이 되면 그녀는>. 4월로 시작해서 한 해가 지나 3월이 되기까지 연애와 결혼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과거의 연인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현재의 사랑에 대해 '이 사람을 사랑하는지, 결혼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중심이 되는 인물은 정신과 의사인 후지시로.
후지시로는 수의사인 야요이라는 여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동거 중인 두 사람은 예비신혼부부라는 느낌보다는 각자의 생활만 하는 룸메이트 느낌이 강하다. 같은 집에서 방도 따로 쓸 정도로 서로에게 무심하다.
현재의 후지시로는 감정표현을 잘 안하고 무뚝뚝한 인물로 나오는데, 과거 20대의 후지시로는 설렘과 떨림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남자였다.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사귀었던 하루라는 옛 연인의 편지를 받고 과거의 풋풋했던 연애를 회상하기도 한다.
결혼을 앞두고 다른 여자에게 흔들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같이 일하는 후배 나나에게 친구 이야기라고 둘러대며 상담을 받는다.
후배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의 관심을 끌고 싶을 때 사람은 한없이 다정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일 뿐이다. 손에 넣은 후에는 표면적이고 무책임한 다정함으로 변해버린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다정한 행동이나 이성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소망을 진정한 사랑과 혼동하는 거다."
인간이기 보다는 로봇이 말하는 느낌이었다. 정말 사랑은 처음에만 불타오르고, 시간이 지날수록 소모되는 것일까.
늘 그런 과정이 반복되는 게 사랑인 걸까.

인공지능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영화'Her' 를 보며 후지시로는 생각한다.
'왜 타인을 사랑할까. 왜 그 감정이 사라져가는 걸 막을 수 없는 걸까.
언젠가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그에 대한 해답을 내주는 날이 올까. (p.154)'
그리고 영화를 보며 울고 있는 야요이를 보며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한다.
안아주지도 어깨에 손을 얹어주지도 못했다.
무미건조해진 연인 후지시로와 야요이. 그들도 처음에는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였다. 설레임이 익숙함이 되어버리고 그 익숙함이 사랑이 아닌 거 같다고 느끼는 남자와 여자. 하지만 사랑에는 늘 설레이는 감정만 있는 게 아니라 익숙함도 있고 권태로움도 존재한다. 늘 설레이는게 사랑의 참모습은 아닐 거라고, 사람마다 사랑을 정의하는 다양성이 있다고 말해주는 소설이였다. 사랑에 있어서 옳고 그름이 분명하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나는 어떤 사랑을 사랑이라고 정의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