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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 - 정의가 사라진 시대, 참된 인간다움을 다시 묻다
송용구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7년 2월
평점 :
인문학과 고전문학을 엮은 『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
사실 두 분야 모두 인기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인문학에 관심이 가서 읽어보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인문학 답게 인간성과 인생의 궁극적 가치, 인간의 의지, 인간의 사랑 등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리고 인문학의 주제와 견해가 비슷한 고전문학끼리 짝지어 나온다.
'현대 부조리극의 창시자로 불리는 소설가이자 극자가인 사뮈엘 베케트' 그리고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
이 둘을 엮어 알베르 카뮈의 눈으로 바라본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생태사회주의 입장을 견지한 작가이자 미국의 사상가인 머레이 북친' 그리고 <침묵의 봄>이라는 '생태환경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레이첼 카슨' 이 둘을 엮어 머레이 북친의 눈으로 읽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런 식으로 인문학과 고전문학이 엮여져 나온다.
그 중에서도 익숙한 책인 <침묵의 봄 (Silent Spring)> 이 나와서 이 부분을 관심있게 읽어보았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서양에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킨 책이다.
농업용 살충제인 DDT가 암을 유발할 수 도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이 책을 읽은 '존 F.케네디 대통령은 환경문제를 국가적 사안으로 논의하는 자문위원회를 구성(p.158)' 하기도 했다.
생태계에 삼각형을 그려보면 제일 위에는 인간이 존재한다.
인간이 최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에 자연 위에도 맘대로 군림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에게 유해 물질이 그대로 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바다에 버리는 플라스틱, 폐식용유 같은 쓰레기들을 제일 하위에 있는 플랑크톤이 먹는다.
그 플랑크톤을 조개, 물벼룩이 먹고 조개와 물벼룩을 작은 생선이 먹는다. 그리고 큰 생선이 작은 생선을 먹고,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은 이 큰 생선을 잡아 먹는다.
플랑크톤이 먹었던 폐기물의 양이 1 이었다면 우리 인간은 몇의 유해한 물질을 먹게 되는 걸까.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플랑크톤이 먹었던 1의 유해물질은 위로 갈수록 그 수치가 높아진다.
플랑크톤이 1, 작은 생선이 50, 큰 생선이 100이라면 인간에게는 300~500 이상의 유해물질 쌓이게 된다.
농업용 살충제도 마찬가지다.
벼와 콩에 뿌리는 살충제는 그 독성이 농축되어서 우리가 직접적으로 먹는 쌀 이외에도 그 쌀을 먹었던 조류, 조류가 낳은 계란, 볏짚과 콩부스럼을 사료로 먹은 돼지 에게도 농축되어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돼지고기를 먹는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는 먹을게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머레이 북친과 레이첼 카슨이 지적했던 '생태 위기'가 현대 사회에 와서 더 주목받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인간이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자연을 훼손시키고 고갈시키면서 역으로 받는 악영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머레이 북친은 '생태문제는 사회문제'라고 말하며 레이첼 카슨도 '자연을 지배한다는 표현은 인간의 오만에서 유래한 것이다'라고 일침을 놓고 있다.
서로 상관없을 수도 있는 인문학과 고전문학이 서로 비슷한 주제로 엮일 수 있어서 신기했다.
하지만 머레이 북친과 레이첼 카슨의 주제에서 '알베르트 슈바이처, 언어학자 알빈 필, 김현승 시인, 헤르만 헤세' 등 다른 인물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정신이 없었다. 각 장마다 제목에 있는 인물 외에 여러 인물들이 튀어나오다보니 책에 각주도 많아지고..가독성이 안 좋다. 그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