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한낮의 연애》처음 접하는 김금희 작가의
글.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는 듯한 표지를 보며 이 책은 어떤
세상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장르,
여러 작가의 책을 접하자 읽자! 라고 다짐했지만 아직도 읽을 책들이 세상에 널려있었다.
아홉 편의 단편 소설을 엮은《너무 한낮의
연애》
여름에 출간된 책이니 여름에 읽어야 하나 싶었다. 신경을
곧추세우는 추운 겨울에 읽어도 이 책이 담아낸 것들을 느낄 수 있을까.
#
첫 시작은 제목과 같은 『너무 한낮의 연애』 로
시작한다.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팀 직원으로 밀려난 필용. 저 높은
꼭대기 층에서 직원들을 부리던 그가 저 밑의 지하로, 징계를 받아 쫓겨났다.
'엘리베이터 점검 날짜를 확인하고..회사 건물에 있는
백칠십팔 개의 수도관과 사천개의 전기회로의 안녕(p.12)'을 챙겨야 하는 곳. 하다못해 점심식사 시간 까지도 간섭 받아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 그가 종로의 맥도날드에서 우연히 "나무는
'ㅋㅋㅋ' 하고 웃지 않는다"라는 현수막을 보았고 필용의 머릿속에서는 순간 회로가 번쩍이게 된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현수막에 걸린 연극을 보러갔고 그곳에서
양희라고 짐작할 만한 배우를 만나게 된다.
대학 시절 후배 양희는 필용에게 오늘은 사랑하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요.라는 밀당아닌 밀당을 했고, 그건 양희의 진심이었다.
독특한 아이였던 양희의 색깔을 반영한 연극.
배우 한 명이 나와 관객 한 명을 선택해서 무대 위로
오르게 하고 서로 의자에 마주보고 앉는다.
그렇게 아무 말없이 아무 행동없이 그냥 정적 가운데에
사람과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있는 게 연극의 내용이었다. 머플러로 얼굴을 둘둘 감은 필용도 그 자리에 앉게 되었고
양희와 마주보게 된다. 필용은 얼마간 눈을 맞추다가 고개를 떨군다. 필용이라는 걸 알았는지 마지막에 양희는 두 팔을
벌려 느티나무가 바람을 타듯 흔들었고 그렇게 연극은 끝이 난다. 회사로 돌아가며 울음을 터트린 필용은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고(p.42)'
양희의 마지막 춤사위는 필용을 알아보고 위로하는
행위였을까.
필용은 그런 양희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범벅이 된
채 '환하고 환해서 감당할 수조차 없이 환한 한낮'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바뀔 수 있었는지, 얼마나 바뀔 수 있었을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다른 선택이 뒤늦게 사랑이였다는 걸 알게 된 양희에
대한 것인지, 회사에서 돈과 관련된 일로 징계를 먹은 일에 대한 후회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
허무하게 끝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불편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단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점심을 먹지않고 점심값을
사장에게 시위하며 청구하는 조중균씨의 이야기.
동아리 내에서 뒷담화의 대상이 되었던 세실리아의
이야기.
상한 고기로 컴플레인을 걸자 마트 직원이 수시로 집
앞까지 찾아와 위협스러운 용서를 구하는 이야기 등.
몇 편의 단편소설을 제외하고는 읽으면서 불편하고
꺼끌꺼끌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불편한 이야기였음에도 마침표를 찍은 이야기들은 꼬리의
꼬리를 물며 상상으로 이어졌다.
'아주 미미하게 건드렸지만 그렇게 생겨난 현수교의 진동과 바람의 진동이 공명하면서, 진동이
커지고 다리가 출렁이고 꺾이고 엿가락처럼 휘어지다 어이없게 무너(p.161)'지고 만것처럼.
가슴을 일렁이게 한 '한낮의 연애'를 지나쳐 '조중균의
세계/ 고기/ 개를 기다리는 일'로 이어질수록 현수교의 진동처럼 불안한 마음이 출렁거렸다. 나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내가 겪은 사건이 아님에도
불편했던 건 왜일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내 주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불안했던 걸까.
뜨거운 기온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여름에 읽었으면 땀을 더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겨울에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밑줄 그은 문장들을
한번씩 더 곱씹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