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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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한 나의 도시 』  『 오늘의 거짓말 』  을 고등학생 때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읽게 된 정이현 작가의 『 상냥한 폭력의 시대 』

'상냥한' 과 '폭력' 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같이 붙어 있으면 안되는 단어가 만난 것 처럼.

총 7편의 단편 소설이 엮여져 있고 책 제목(상냥한 폭력의 시대)과 같은 제목의 이야기는 없었다.

큰 기대를 하고 책을 읽어서 그런가, 크게 잔상에 남는 이야기는 없었다. 제목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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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 는 '나(희준)'와 새어머니이면서 동네사람들에게는 '미스조'라고 불리우는 조은자씨 와의 관계 이야기이다.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미스조는 새 아들 희준에게 늘 상냥했다. 희준의 아버지는 미스조를 호적에 올리지 않았고 친척들에게 소개하지도 않았다. '어떤 사람이 제멋대로 나를 침범하고 휘젓는 것을 묵묵히 견디게 하는 건 사랑이지만, 또 그 이유로 떠나기도 (p.31)' 하는데 미스조가 그런 경우였다.

미스조는 아버지를 떠난 사람이었다. 희준은 미스조와 자신의 관계를 '알고 지내는 사이'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희준에게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미스조가 유언으로 희준에게 남긴 건 그녀가 키우던 '거북이'였다.


희준은 '최근 몇 년간 내 삶에서 일어난 가장 극적인 사건 목록'에 거북이와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추가해야 한다고 했지만,

마흔번 째 생일 아침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떠올리며 (p.33)'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희준은 가장 극적인 사건 목록 1번에 '미스조의 죽음'을 추가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안 것 같다.



네번째 이야기 '영영, 여름' 에선 무역회사에 다니는 일본인 아빠 와 귀부인처럼 사는 한국인 엄마, 그리고 나(와타나베 리에)가 등장한다. 해외 영업원인 아빠를 따라서 해외 곳곳으로 이사를 다니는 바람에 리에도 학교를 여러번 옮겨야  했다.

엄마는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모국어인 한국어로 리에에게 곧잘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리에는 '가끔 엄마가 딸의 몸무게가 아닌 영혼의 무게에도 관심이 있는지 궁금 (p.106)'해 한다.


그렇게 또 한번의 이사와 전학. 남태평양 부근의 K시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리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계기로 메이와 친해지게 된다.

리에의 몸무게를 걱정하는 '엄마의 부실한 도시락'과 메이의 '휘황찬란한 도시락'을 서로 바꿔먹으면서 둘은 더 가까워진다.

하지만 겨우 사귄 친구 메이는 리에의 조그마한 실수로 학교를 떠나게 되고, 리에는 모래사장에 앉아 메이를 그리워하면서 '단단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 부서지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p.130)' 생각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20년이 지나가버리고,

리에는 여전히 '침묵만이 남은 미래에서 암흑과 뒤섞일 때까지 앉아 있었다 (p.131)'


메이를 떠나보낸 후 리에는 줄곧 메이를 기다려왔지만 메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뒤에도 침묵만이 남은 미래에 홀로 남겨진 걸 보니, 메이 외에 다른 친구는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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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속 희준도, 네번째 이야기 속 리에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떠올리고 '단단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 부서지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미스조의 상냥함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두며 지냈던,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희준은 미스조의 죽음을 믿기 힘들어했고

뒤늦게 서야 슬픔을 인지했다. 그리고 희준이 생각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은 앞으로 닥칠 또 다른 슬픔을 말하는 거 같고,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들'은 아버지나 미스조와의 (이뤄지지않을) 만남을 말하는 것 같았다.


리에 또한 '단단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과 '부서지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홀로 생각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단단한데 부서지기 쉬운것들이라는 말을 쓰니 의미가 또 한번 중첩되는 느낌이다. 친구 메이와의 우정을 의미하는 것 같다. 

부서지지 않는 것들은 리에의 엄마나 리에가 놓인 외로운 상황을 의미하는 걸까..


희준과 희준의 아버지는 미스조에게, 리에의 엄마는 리에에게. 가깝지만 먼 사이에서 '상냥한 폭력'이 일어나고 있었다.

A가 B에게 '상냥한 폭력'을 휘두르는 이야기들이 모여 『상냥한 폭력의 시대』 가 되었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마지막에는 문학평론가 백지은의 해설이 나온다. 아직 읽지 않은 해설을 이제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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