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 -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와 그림의 만남
이운진 지음 / 사계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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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 책 제목에서 고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린 빈센트 반 고흐가 맞다.

화가에게 시를 읽어줄까요? 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와 그림의 만남'으로 그림 한 편과 시 한 구절을 짝지어 소개해 준다.


목차도 전시실 분위기로 1전시실, 2전시실, 3전시실로 나뉘어진다.

1전시실에서는 따사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생일 선물, 엄마의 낡은 스웨터, 감자 냄새, 러브레터 등 이야기가 나오고

2전시실에서는 '가장 밑바닥 감정의 기록'이라는 부제목으로 등의 슬픔을 보여줘, 눈물의 맛 농도, 한없이 혼자인 날 등 가슴 쓰라린 이야기로 이어진다. 3전시실은 자아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자화상, 거울에 대한 이야기 등이 나온다.


이 중 2전시실- '등의 슬픔을 보여줘' 3전시실-'작지만 큰 세상, 서재' 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와닿았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가볍든 무겁든 누구나 짊어지고 있는 운명의 짐을 벗어 버리려고 했던 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돼."

책 속의 모든 말은 -다.로 끝나는 문장이 아닌 ~어,~돼 같은 대화체로 끝난다.

처음에는 '대화체의 긴 문장들이 과연 책에 집중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누군가가와 나누는 대화 같은 분위기여서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저자 이운진은 언니가 동생에게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겪었던 여러 감정들을 공유하며, 그림과 시를 만나 위로를 받았던 경험들을 말해준다.

 

 

 

 

 

'가슴 아픈 일로 울고 있을 때 가만히 다가와 등을 쓸어 주던 손길이 있었어.

 내 등줄기의 곡선을 따라 천천히, 울음이 잦아드는 속도처럼 느리게 등만 쓰다듬어 주었어.

 토닥토닥 등을 다독여 주는 그 손은 백 마디 말보다 든든한 힘이었지. (p.87)'



힘든 일이 있을 때 눈물로 그런 감정이 터져나올 때. 백 마디 말보다 누군가의 포옹만으로도 마음이 진정이 되고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저자도 그런 감정을 느꼈을 때 누군가의 따듯한 손길로 위로를 받았고, 그 손길이 '왜 그토록 따뜻했는지'를 후에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우리의 얼굴에 쌓이는 세월은 눈으로 확인하며 애달파하지만, 보이지 않고 보지 못하는 등에는 어떤 상념이 내려앉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등을 토닥이고 등을 쓰다듬고 등을 안아주고 싶지만, 우리 스스로가 안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등'에 대한 그림과 시는 애절함까지 느끼게 했다.


사진은 오귀스트 로댕의 <다나이드>라는 조각상의 모습이다.

얼굴을 땅에 파묻고 몸을 편히 누이지 못한 한 여인의 모습. 내 상상으로는 처음엔 무릎을 꿇고 앉아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릎을 꿇고 있다가 어떤 큰 슬픔에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묻게 된 듯하다.

<다나이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다나이드의 딸'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다나이드의 딸들은 죄를 지어 대가를 치뤄야 했는데 '지옥에서 구멍 뚫린 통에 물을 가득 채워야 하는 벌(p.92)'을 받았다고 한다. 로댕은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조각상을 만들었다.  

 

 

 

 

 

 

 

<다나이드>에 이어 같이 엮인 시는 서안나의 '등'

시 속에서 우리에게 등은 '손이 닿지 않는 곳'이며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등을 볼 수 없음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고 하나의 몸이지만 나의 등은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나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나의 몸이지만 정면과 다른 나의 배후, 한 번도 마주 보지 못한 나.

시를 읽으면서 내 등이 새삼 이질적으로 느껴졌고 스스로 쓰다듬어 줄 수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아무도 생각나지 않을 때나 양동이 가득한 ​물처럼 아슬아슬 넘실대는 마음일 때,

 아픔이 짙은 소설책들은 어지러운 내 생각을 지긋이 눌러 주곤 했어.

 책은 말없이도 나를 다독여 주고 귀 없이도 내 얘기를 들어 주는 것 같았지. (p.190)'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들과 책 속의 내용들이 많이 닮아있어서 놀랐다. 전시실에서 그림을 보는 것과 같이 조용하게 저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위로해주고 토닥여주는 느낌이다.

'아픔이 짙은 소설책'들이 소용돌이 치는 마음을 지긋이 잠재줘주고, 내 얘기를 들어준다는 것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너무 큰 상념에 빠지게 되면 책 속의 글자마저도 눈에 안 들어온다.

 

시간이 조금 지나 가라앉은 마음으로 책을 펼쳤을 때 날이 섰던 마음을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책으로 <고흐 씨 시 읽어줄까요> 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시와 그림,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로 위로 받을 수 있는 책, 저자의 다음 책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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