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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떻게 이 책의 이야기를 풀어야할까?
소개에 앞서 직접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붉은색의 표지는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책제목을 더 두드러져보이게 한다. 죽음을 연상케하는 핏빛을 떠올리게 한다.
* 김병수, 그는 누구인가.
1인칭 시점의 '나', 김병수는 70세의 초로한 노인이다.
그는 지난 30년간 살인을 저지르며 살아왔고, 25년간은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7쪽)"가 아닌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으로
다음, 그 다음 살인을 저질렀다.
하지만 신(神)이 그에게 내린 벌일까?
그는 치매인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고 만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그는 두서없이 과거로도 갔다가 현재로도 되돌아왔다가를 수없이 반복한다.
책을 읽으면 마치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생각 저 생각 정신없는 그의 사고(思考)는 끊임없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뼈만 남은 겨울산이 핏빛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금세 칙칙해진다. 저런게 좋아지다니 죽을 때가 된건가.
지금 보고 있는 것도 곧 잊어버리겠지."(39쪽)
그가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병. 그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짐작도 할 수 없었던 병이었다.(직접 걸려보지않았기 때문에)
그의 기억은 끊어진 필름, 수명이 다 해 깜빡이는 전구같다.
방금 한 일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그가 얼마나 답답하고 미치겠는지 이해가 갔다.
신이 살인자에게 준 벌이 너무나 관대하다고 느꼈었는데, 알츠하이머병만큼 죽지못해 살며 고통스러운 병도 없을 것 같다.
* 예를 들면 우리 집 마당이라든가.
그에게는 은희라는 딸이 한 명 있다. 그는 은희의 부모를 죽였고 은희를 거두었다.
어엿한 어른이 된 은희는 생모와 생부에 대해 궁금해한다.
"아빠는 내 생모가 돌아가셨다고 햇잖아요. 그런데 안형사 말로는 실종된 상태래요.(..)
생부는 병원에서 발부한 사망진단서도 있고 사망신고도 돼 있지만 엄나는 없대요. 장기실종으로 사망처리가 되었다는 거예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이상하잖아요."
(중략)
"고아원 원장이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 네 엄마는 죽었다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엄마는 그럼 지금 어디 계실까요?"
"모르지. 어쩌면 아주 가까운 데 있을지도."
예를 들면 우리 집 마당이라든가. (103쪽)
헉-그의 말에 놀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 김병수, 그에게 남은 가족 은희.
은희가 박주태라는 사람에게 살해당할 것을 예감하고, 김병수 그는 필사적으로 은희를 지키려 한다.
"수치심과 죄책감 :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저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중략)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타인의 시선이나 단죄는 원래부터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부끄러움은 심했다. 단지 그것 때문에 죽이게 된 사람도 있다.
-나 같은 인간이 더 위험하지. 박주태가 은희를 죽이도록 내버려둔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105쪽)
허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할 것!
그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환자다. 뒤돌아서면 방금 한 일도 잊어버리는 머리속의 지우개를 가지고 있다.
살해혐의로 경찰에 잡힌 그. 그의 기억속은 경찰들에 의해 더 뒤죽박죽이 되어간다.
"아저씨, 김은희씨는 아저씨 딸이 아니잖아요. 요양보호사잖아요. 치매 노인 찾아가서 간병하고 도와드리는 재가 요양보호사." (134쪽)
"사람들은 은희와 관련된 내 기억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 아무도 내 편이 없다." (141쪽)
도대체 뭐가 진짜고 가짜인걸까? 어디서부터가 실제이고 허구인걸까?
김병수가 겪은 그 기억들은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곁에 있었던 딸 은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건 사실, 아니 어쩌면 이것도 거짓인가?
지금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취조받고 "엄정한 사각틀로 구획된 철의 세계(121쪽)"에 갇힌 김병수.
설마 지금까지 기억들 모두 그의 상상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인 걸까?
"미지근한 물속을 둥둥 부유하고 있다. 고요하고 안온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공(空)속으로 미풍이 불어온다. 나는 거기에서 한없이 헤엄을 친다. 아무리 헤엄을 쳐도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소리도 진동도 없는 이 세계가 점점 작아진다.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된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
아니, 그것조차 사라진다." (149쪽)
그의 기억도 이렇게 점이 되어 한없이 작아지다가 사라졌겠지.
*

김영하 작가의『살인자의 기억법』이 예약주문시기에, 김영하작가의 특별한 이야기를 Yes24에서 들을 수 있었다.
메이킹 스토리이기도 했던 글은 김영하 작가 개인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기에 작가에 대해 더 알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
그리고 그 글을 읽었던 나는 김영하 작가가 했던 말중에 『살인자의 기억법』의 김병수에게 어울릴 만한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기억을 잃었고, 기억을 잃었다는 것 자체를 모른 채 살았다. 즉 망각을 망각했던 것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메이킹 스토리 3. 나밖에 쓸 수 없다. 中-
망각을 망각했다..참 인상깊은 말이다.
김영하 작가는 다크한 마력을 가진 소설가라 생각된다. 또 다음 그의 글을 기다리면서..
『살인자의 기억법』을 또 펼쳐본다.
[김영하 스타일 에세이 보러가기 그림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