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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15년 1월 31일 읽음.
김연수의 글은 소설보다는 산문이 좋다. 예전 글보다 요즘 글이 더 낫다. 책을 낼 때마다 더 훌륭해진 글들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다소 이상한 이 문장은 이 글을 읽어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말하자면, '이겨야 산다'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자는 이야기다. 누구에게 기를 쓰고 이기지 않아도 살 수 있다.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도 된다. 그런 삶이 있고 그런 깨달음이 세상을 다르게 만들고, 나를 다르게 만든다는 것.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모았던 것인지 비슷한 길이의 짧은 산문들을 모은 산문집이다. 한 편 한 편이 짧막하면서도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어 좋다. 김연수스러운 유머, 누굴 놀리지 않고서도 누구 하나 바보를 만들지 않고서도 빙그레 웃을 수 있게 만드는 유머가 살짝 배어난다. 이 뒤에 나온 <소설가의 일>에 비하자면 아직 유머가 양념수준으로 살짝 넣은 편. 짐짓 도덕 선생처럼(이런 비유는 윤리교사에게 참 미안한 표현이지만^^) 무거울 수 있는 인생론의 주제들을 매우 가볍고 경쾌하게 가로지르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생과 자신의 글쓰기를 달리기에 자주 비유했던 것처럼 김연수도 인생을, 글쓰기를 달리기에 곧잘 빗댄다. 그 비유는 뛰어본 사람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인지 정말 그럴 법하다는 생각에게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의도한 바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달리기 예찬론'으로 이 책의 부제를 붙여도 무방한 수준. 정말 읽다보면 책장은 잠시 덮고, 당장 달리기를 하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달리기 선수들은 어쩜 그리 명언을 잘 남기는가 감탄을 하게도 된다. 마라토너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을 어디서 구해읽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도 살짝 든다 ^^
다 좋았지만 좋았던 글 몇 편을 골라보면,
로자는 지금 노란 까치밥나무 아래에, 146쪽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 212쪽
두 편이 좋다. 둘 다, 지금 이 순간 순간을 생생하게 충실하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며 그런 삶은 영원히 자기 자신만의 것으로 남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결국 이 책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그 이야기를 한다. 읽고 나면 정말,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듬뿍! 솟아나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