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9일 읽음. 열대에 가고 싶다. 열대 과일이 먹고 싶다. 수영장에 옷을 입은 채 뛰어들고 싶다. 열대의 소낙비에 흠뻑 젖고 싶다. 흙먼지 폴폴 날리는 열대의 밤길을 타박타박 걷고 싶다. 열대의 더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이마에서 콧등에서 겨드랑이에서 등에서 땀을 뚝뚝 흘리고 싶다. 한여름 아니 태양의 한복판에 서 있고 싶다. 신이현이란 작가는 잘 모른다. 1994년 <숨어있기 좋은 방>이란 작품으로 데뷔했다고 하니 20년이 된 중견 작가다. 데뷔작만 어렴풋이 읽은 기억이 나지만 그것도 확실치 않다. 프랑스 남편을 두고 남편을 따라 캄보디아에서 여섯 해를 살았단다. 이 책은 그 때의 기억을 풀어낸 것. 여행기라기보다 일종의 소설일 듯.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이다. 캄보디아에 살며 만난 인연들, 다섯 인물을 열대 과일에 빗대어 풀어낸 이야기이니까 실제 이야기면서도 그 인물들의 사연을 작가가 다시 풀어써냈으니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섯 인물과 과일을 소개해본다. 청년 잭 푸르트의 경우, 시시껄렁하고 뒤죽박죽인 열대의 나날들 망고 아저씨의 경우,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사나이의 열대의 나날들 두리안의 경우, 조금은 로맨틱하고 서글픈 열대 호텔에서의 나날들 불꽃씨의 경우, 모든 길에 벌레들의 이름을 붙여 준 열대의 나날들 파파야의 경우, 대체로 퇴폐적인 상상으로 흘러가는 열대 우기의 나날들 나는 열대 과일을 잘 못 먹는 편인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열대 과일이라면 무엇이라도 아구아구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열대 과일을 눈으로 먹은 듯 하다. 더불어 그 인물들의 삶도 함께 살아온 듯. 이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이들의 사연은 어찌나 소설 같은지. 그런데, 이들의 삶은 열대적이다. 무엇인가를 이루고 쟁취하고 성취하며 얻고자 하는 것이 없다. 삶의 팽팽한 대결 따위는 열대의 뜨거움에 녹아버린지 오래다. 이들의 삶은 애쓰지 않아도 절로 피어 자라난 열대의 나무들과 절로 영글은 과일들처럼 그저 더위 속에서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그런 무위의 인생에 온갖 감정과 사연이 넘친다. 애써 키우지 않아도 향과 즙이 흘러넘치는 열대 과일처럼.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