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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거리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내가 2011년 6월, 오사카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읽은 책이다.
책을 읽고 난 소감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져 눈을 감고 계속 노래를 들은 게 생각난다.
많은 생각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오랫동안 회상에 잠겼다.
법정 스님은 "좋은 책이란 단숨에 읽히는 책이 아니라 단 하나의 문장으로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7월 24일 거리'는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
지금보니 책 표지에 써있는 하나의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실수라도 상관없으니 이 사랑을 선택하겠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나요?"
# Main
『7월 24일 거리』에는 일본 문학 (드라마를 포함한) 특유의 발랄함과 씩씩함이 있다.
소설 화자인 여주인공 혼다 사유리는 자신이 사는 거리를 책에서 읽은 리스본 거리와 동일시하면서 사는 인물이다.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리스본의 풍경을 상상하면서 자신의 동네 지명을 리스본의 지명으로 바꿔부르며 즐거워한다.
상상력만큼은 누구보다도 풍부한 사유리는 사실 사랑에 있어서는 소극적이고 겁이 많은 사람이다. 어느 날 그녀는 오래도록 짝사랑한 남자 사토시의 연락을 덜컥 받는데, 사유리와 친한 선배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경력이 있는 그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일상의 지루함을 이겨내고자 리스본의 이국적인 모습을 몽상하면서 살던 사유리에게 '사랑'이라는 현실적인 주제는 너무 낯설고 직접적이며 복잡하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얽혀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강한 믿음과 이해하려는 마음을 필요로 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 사유리가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고 표현하기 위한 용기를 배우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내가 일본 소설 속 인물들의 발랄함과 씩씩함을 문화적 특성으로 보는 것은 한국 문학에서는 이러한 기질을 극히 보기 드물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성 화자들은 몹시 여리면서도 사려깊은 사람들이어서 그녀들의 내면을 묘사하는 표현들은 때로는 낯간지럽기까지하다(그래서 내 주변에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설정이 결코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쓰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유리는 분명 독특한 인물이다. 사유리가 리스본의 거리를 자신이 사는 세계에 덮어씌우는 것은 그녀가 그런 낭만성을 지닌 사람이라서 그렇다. 나는 이 낭만성을 우리는 '오글거린다'거나 '중2병'이라는 수식어로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사람들이 혹은 대중이 언제부턴가 미숙한 것, 소심한 것, 순수한 것을 세상물정 모르는 것으로 비약시켜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태도 또한 일종의 편견이고 이기적인 모습이지 않은가.
나는 사유리처럼 삶에서 오는 지루함을 이렇게 발랄하고 유쾌한 상상으로 지우는 인물을 국내 소설에서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홉살 인생』의 골방철학자가 떠오르지만 그의 결말은 비참했다. 박민규 소설 속 화자에게도(혹은 작품 자체에) 분명 유쾌한 상상력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삶은 어딘가 삐걱거린다. 병적인 내면을 안고 있거나 그렇게 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유리의 상상은 건강하다. 그래서 힘들고 병적인 상상력으로 고통받는 인물들이 넘치는 지금의 소설들 사이에서 이 작품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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