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역사 다시 읽기 1
김정남 지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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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2일 탄핵가결로 이 땅의 민주화운동이 도마에 올랐다. 막연하게 알았던 4월,5월,6월의 민주화운동의 기록을 찾고자 한국현대사를 다룬 책을 몇권 뒤졌지만 더 생생하고 자세하게 알고 싶었던 욕심을 채우진 못했다. 얼마 뒤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4월혁명,5월항쟁,6월항쟁을 각각 한권에 쓴 책에 눈길이 가서 바로 사 읽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때는 교과서에는 어떻게 나왔는지, 배우기나 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몇십년 전 사실을 어른이 되서 새롭게 받아들이고서 지난날을 되새기고 역사의식에 대해 훨씬 더 깊이 고민하게 만든 값진 책이다.


 자유는 무엇일까? 민주는 무엇일까? 지난 44년동안 지금의 아버지,어머니가 이땅에서 민주화를 위해 피와 땀을 흘렸기에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자유를 누리고 살고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청년들은 모르거나 아니면 그저 상식속 귀퉁이에 치워놓았는지도 모른다. 자유화 민주화를 가득 누리고 사는 21세기 젊은세대들한테 이 두 단어의 의미는 얼만큼이나 퇴색했는지 모른다. 물질이 사람정신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런 얘기들을 꺼내는 건 되돌아올 냉소를 듣게 될 각오마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렇게 서서히 자유와 민주의 의미는 상실해 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참여문화가 들어서고 지난 3월20일에는 수십만의 시민들이 광화문거리에서 민주수호를 외쳤다. 하지만 그렇게 활활 타올랐다가 다음날 금방 시들었던 모습은 이정도나마 민주화를 이룩한 사회에 대한 안일함과 방관이라 느껴 안타깝기도 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전보다 폭넓게 보장받고 다양성이 점차 인정받는걸 보면 역사는 분명하게 60년 4월,피의 화요일보다 몇걸음 나아갔다. 하지만 제도로써 민주화가 보장되는 이 때 민주화는 이루었다는 생각은 위험할 수도 있다. 민주를 얻기 위한 싸움은 아직도 멈추지 않았고, 못다 이룬 민주화를 완성하는게 싸우다 가신 님들한테 보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남주 시인이 자유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의 의미를 이 책을 읽고 눈물 한줌을 떨구며 가슴에 새겼다. 책 속의 사진은  고등학생들의 표정에서 부정부패에 맞서는 행동 자체가 자유롭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경찰이나 군인과 부딪히며 직접 피를 흘리고도 굴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싸운 행동들이 어떤 자유보다 참되고 진실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끝부분에서 감동과 분노와 슬픔을 눈물로 쏟아졌다. 그러면서 정신의 한 부분이 한 겹 벗겨지는 듯했다. 사람을 트이게 하는건 논리나 이성이 아닌 감동이라고 한다는데 그 진리를 이제서야 몸으로 익힌 기회를 준 고마운 책이다. 비록 얇은 두께지만 내용만큼은 어떤 역사책보다 훌륭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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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인연
김원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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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뒤에 남은 여운은 세월이 많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소설에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한 감격이었고 실제역사의 회고록이기에 사실감이 그대로 와닿았다. 김원 무순전범 관리소장의 회고를 따라 중국 현대사의 한 부분을 여행하면서 '이토록 거룩하고 기가 막히는 역사 이야기가 있을까?' 그런 느낌 그대로 받았고 중국현대사의 매력에 빠졌다. 책을 읽는 동안 보석을 발견한 듯한 황홀감이 들었다.

전범이 교화되는 과정은 완전에 가까운 인간혁명’이다.

일제 침략자들이 저지른 만행은 인류역사상 가장 극악무도했다. 무고한 백성들의 손바닥을 사슬로 꿰어 세어놓고 신병들의 창격훈련을 시키는가 하면 살아있는 사람의 뇌수를 파먹고 생체실험을 한 살인자들이다. 죽여서 없애야 마땅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180도로 교화되는 과정에서 얻은 감흥은 조금은 익숙하지만 한차원 높은 감흥이었다. 변증법의 체험속에서 낳은 희열을 어슴푸레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내가 느낀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전범들의 변화는 변증법의 모범에 가까웠다. 전범들은 스스로 무순전범관리소를 감옥이 아닌 참된 인생을 배우는 학교로 여겼다. 관리소 직원 또한 진정한 스승 노릇에 아낌없는 정성을 쏟았다. 관리소원들은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차차 전범들을 너그롭게 대했고 전범들도 직원들의 대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때때로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관리소원들의 노고가 큰 것은 사실이나 전범들이 자기 죄상을 탄백하고 스스로를 부수며 개조하는 모습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감격스러운 인간본연의 참모습이였고 그 장면을 넘기며 종종 눈시울이 붉어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모택동 주석으로 있던 당시 중국공산당의 인도주의 정책은 일본전범들을 단 한명도 사형에 처하지 않고 교화 개조시켜 석방시켜 고국으로 보내는데 성공했다. 참으로 위대하고 놀라운 역사의 진실이다. 그리고 중국의 격변기를 따라 관리소장과 전범들 사이의 인연은 기구하게 이어진다.

1988년에 상영한 김원 소장과 만주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그도 전범관리소의 수감자였다.)의 관계를 다룬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시나리오를 쓴 베어감독은 진실을 다르게 표현한다.

'간수와 죄수를 한 집안 식구처럼 묘사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믿지 않을거고, 따라서 이 영화의 진실성까지도 인정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막대한 경비를 들인 이 영화를 팔 수 없습니다.' 사실 그대로 그렸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여전히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영화매체에 담긴 상업성을 배제하지 못한 베어감독의 처지를 힘겹게 이해해야 하는 현실이 못내 원망스럽기도 하다.

일제가 패망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일본전범들은 자기자신의 죄상을 고백하고 뉘우치는 책을 쓰며 군국주의와 싸우는 평화운동가로 활동한다. 또 귀환자 연락회를 세우고, 그들 인생 황혼기에는 전범관리소가 있던 곳에 사죄비까지 세우는 갸륵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책장을 덮고 내내 벅찬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김원 소장을 직접 만나고 싶어져서 생사를 알아봤지만 몇 년전 별세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 기회가 된다면 사죄비를 직접 보러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사죄비 앞에 선다면 어떤 기분일까? 너무나 벅찬 나머지 사죄비를 껴안고서 통곡까지 하진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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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강수돌 지음 / 그린비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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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교사 사이에 신뢰가 금이가고, 급우들은 경쟁이나 경계의 대상이며, 부모한테 밤낮 없이 달달 볶이는 등 우리 아이들은 왜 아직도 이중삼중의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것일까? 일류대강박증, 옆집아줌마, 관료주의, 물질만능주의... 온갖 사회의 병폐들이 참교육을 가로막고 있다. 답답한 교육문제를 어떤식으로 풀지 강수돌 교수와 허심탄회하게 만나보자.

내가 잘 살려면 다른 이가 패배해야 한다(?). 우리사회는 더불어 살지 못하고 남을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며 수직논리 위에서 경직된 삶을 살아왔다. 다른 이의 불행을 곧 나의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참 안타까운 현실이 당연한 현실로 돌변해 버렸다. 본래 인간이란 이웃과 서로 어울려 협동하고 나누면서 절대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 있는데 이를 무색할 만치 요지경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요지경인 세상(정치,경제,사회)과 교육문제를 같이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저자의 진단한 첫째 내용이다. 둘째는 아이들의 처지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셋째는 ‘나부터 바꾼다’는 자세로 문제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의 지배,착취구조와 교육이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교육문제로만 봐서는 동전의 한면밖에 보지 못하게 되고 기성세대가 아이들을 독립된 한 인격주체로 보지 않아 오류를 범하게 되고 지배이데올로기와 어려운 살림살이로 변화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갖는 소시민스런 우리의 모습을 풍부한 사례를 더해 설명함으로써 쉽고 재밌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력 훈련소로 전락하고 관료주의로 굳어진 오늘날 학교의 모순점을 샅샅이 짚어주고 뚜렷한 대안과 함께 분투하는 교사들이 있기에 참교육을 향한 꿈은 멀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아직도 나는 ‘아무래도 서울의 4년제 대학쯤은 다녀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서울에서 사는 것이 모든 점에서 유리하고 이롭지 않을까?’ 하는 타성을 깨끗이 버리지 못하는 한계를 느끼며 반성을 거듭해본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맞는 말이라 생각해서 허벅지를 '탁'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도 한편으론 ‘나부터 교육혁명’에 일조 할 수 있을 것인지 완전하게 확신이 서지도 않고 용기도 쉽사리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책 끝부분의 ‘급류타기’ 일화에 나오듯이 급류를 굽이굽이 넘을때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회피하지 말고 그대로 부딪히는게 거뜬한 것처럼 제대로 넘어가려면 제대로 타야 산처럼 쌓인 문제를 하나둘 풀 수 있다는 말 속의 진리에 격려를 받고 용기와 희망을 다지게 되었다.

책의 맨 뒷부분에는 초,중학생 아이를 셋이나 둔 강수돌 교수 자신의 경험과 참된 변화를 위한 지침들, 참고 사이트까지 소개되어있어 교육혁명에 나서려는 분들께 알찬 양식이 되어 줄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나부터 교육혁명’을 통해 참교육을 실천함과 동시에 더불어 사는 건강한 사회를 향한 희망을 갖는데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 답답한 교육문제 가지고 혼자서 끙끙 앓지만 말고 함께 풀어 나가면 머지않아 참교육의 문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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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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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을 손에 잡게 된 계기는 우연한 기회였다. 전태일이 죽은지 33년째 되었던 지난 11월 13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전태일과 조영래의 이야기를 듣고 짜릿한 무엇이 가슴을 저리게 했다. 그날 저녁부터 짬짬이 <전태일 평전>을 읽어 넘기기 시작했다. 몇년전부터 어설프게나마 시위현장을 배회하며 진보의 의미를 새겨왔던 사람치고는 <전태일 평전>의 늦깍이 독자가 된 것이다. 진작 읽었어야 할 책인데... 더 늦기전에 읽게 된것이 다행일까? 결국 이제서야 내게 구원을 안겨준 느닷없던 행운에 감사한다.

나는 나흘동안 새벽 5시반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한시간 반 걸리는 분당에 있는 공사현장까지 가서 밤9시까지 일했던 적이 있다. 업주는 고작 5~6명 정도를 거느리는 작은 사업가지만 평화시장의 기업주와 별반 다를바 없는 악독업주에 속했다. 인부들의 임금지급을 한달째 미루고 그 중 필리핀 노동자 한명은 두달치 임금을 못받았는데다 임금얘기를 꺼낼때는 업주가 손을 치켜올려 살짝 겁을 주기도 했다. 일이 늦게 끝나고 얼른 집에가서 눕고싶은 맘이 가득한데 여관방 한칸 잡아놨으니 인부들이랑 같이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하라는 업주의 요구를 듣지 않았고 한번은 무리를 한탓인지 피로가 단번에 쏠려와 조퇴하기도 했으니 밉보일 수 밖에 없었고 나 또한 인정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던 업주를 미워했다. 결국 임금도 못받고 일을 그만두었다.

지극히 짧은 내 경험이지만 70년대의 평화시장과 크게 다를게 없는 오늘의 노동현실의 일부분이다. 물론 평화시장의 노동현실은 훨씬 가혹했던 것이다. 그 나이도 어리고 몸도 여린 여공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데도 눈하나 깜짝 안하는 업주의 괘씸한 행동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전태일의 번민에 공감하며 그때의 참상이 가슴으로 느꼈다. 한편 그런식으로 인간을 철저히 물질화 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부조리한 구조에 전태일과 몇명을 제외한 청계천의 3만노동자가 침묵했던 것에 대해 화가 많이 났지만 그 시대가, 그 사회가 그들에게 순종하고 침묵할 것을 강요하지 않았나. 더구나 악질같은 노동조건에 대한 저항은 여전히 탄압받고 있다.

전태일이 분신을 시도하기 전날인 1970 11월12일, 죽을것을 결심한 그가 식구들과 잠깐 대화를 하고 문을 나서는 장면은 결국 나를 울리고 말았다. '빈(貧)한 환경'을 늘 껴안고 지내온 그의 식구들, 돈 조금만 마련해달라고 조르는 동생 순옥에게 그는 할말이 없었다. 도대체 '빈한 환경'은 누가 만든것인가? '부(富)한 자'들의 제물이 곧 '빈한 자'들 일것이다. 부한 자들은 자기들 때문에 어렵게 생명을 이어가는 빈한자들의 처지를 알지 못한다. 다음날 전태일은 '부한 자'들의 연결고리에 횃불을 던져 그 고리를 분해하려던 것이었다. 그 용기와 희생에 찬사가 쏟아지기도 했지만, 나는 아무말도 못하겠다. 물론 전태일의 업적은 대단했다. 그리고 노동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등불이 되어주었다. 그런 억울한 죽음이 멈추지 않는 지금, 전태일을 비롯한 죽음으로 항거한 열사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못마땅한 현실을 '자기의 일'로 껴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것이다.

올해도 많은 노동자가 전태일의 뒤를 따라 죽었다. 기업주들은 여전히 눈하나 깜짝 안한다. 무엇때문에 가난한 노동자들은 억압과 착취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가난이 죄인가? 모두가 빈부가 용해되어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전태일. 그는 역사의 대변자이고 구원자였다. 진리와 모순을 온몸으로 깨닳은 훌륭한 성자였다. 그는 우리세대에게 참다운 귀감이 되었지만 왜 전태일의 죽음까지 그 바톤을 이어받아야 했던 것일까? 침통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아직도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보수언론은 공갈을 치고 또 여론은 유유히 공갈을 퍼뜨려 노동자들을 좌절시킨다. 원통하고 원통하다. 다 엎어버리고 싶은 세상이다. 국회의 많은 자리엔 '일하는 사람'의 자리가 하나도 없다. 빈부의 법칙은 진정 바뀔 수 없는 것인지... 전태일에게 할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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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의 통일이야기
백기완 지음 / 청년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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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글쓰기 앞서 한참동안 펜머리만 굴려야 했습니다.이 같이 벅찬 감격과 깨우침을 어떻게 저같은 소인배가 감히 서평으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을까? 그 만큼 통일이야기의 무게와 가치가 겸허한 초심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앞서, 저의'서평'이 아닌 읽은 후의 순수한 느낌으로 여러분 가슴 한켠이 뜨거워지길 바라며...

과연 어떤 감격이 와닿는 것일까?난 땅불쑥하니(특히 -저자가 즐겨 쓰는 순우리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반드시 느껴야만 하는 감격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한다. 우리시대 어른들이 지난 1900년대 초부터 일본과 미국,그들의 앞재비들에게까지..그 짓밟힘 속에서 겪은 뼈저리는 아픔과 분노의 감격이란 말이다. 중고교에서 그저 시험에 대비해 암기해야 할 지식으로 배운 것들이 이책에선 가슴으로 생생히 와닿아 소용돌이 치는데 그 오만한자들의 행위 앞에 대부분의 사람이 주먹을 불끈 쥐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할 것이다. 정말로 우리나라 사람이 한번쯤 꼭 읽어야 할만한 민족의 한맺힌 이야기를 접하고는 때때로 눈물을 안흘릴 수가 없었다.

또 깨우침은 대체 어떤 깨우침일까?현재 우리나라 청춘남녀들은 초등교육때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불러온 지라 영문도 제대로 모른체 통일은 이루어야 할 과제란 것을 알고 있지만 더러는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청춘들도 상당하다. 통일을 바라지않는 그들은 뭣하러 통일을 하냐? 남한은 잘살고 북한은 못사는데, 통일을 하면 남한도 못사는 것이 아니냐?라고 이유를 대기도 한다. 그것은 자기만 잘 살면 된다는식의 사고가 우리 뼈속까지 들어와 판을 치고 제도권교육이 우리역사의 앞면만 가르쳤기에 그럴것이다. 이렇게 통일의 염원조차 흔들리고 있는 마당에 우리모두는 역사의 앞뒷면을 모두 깨우침이 절실할 것이다. 청춘뿐 아니라 남녀노소 직업을 불문하고 모두가 깨달아야 할 통일. 통일은 그저 갈라진 허리만 읻는게 아니란 것을 저자는 말한다. 백기완 선생님 뿐 아니라 이야기속의 몇몇의 인물들은 내 마음의 스승이되어 진짜 통일과 올바른 삶의 깨우침을 준다. 난 가끔씩 그 깨우침이 신랄하게 요동쳐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반성하기도 한다.

분단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주변을 한번 돌아보면 우리가 접하는 언어,언론,문화,예술 등이 일제와 미제에 어느만큼이나 물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이 미치는 위험성을 못느끼고 있다. 허나 진실을 꿰뚫어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저자는 그것들의 모순을 간파하여 우리에게 일러준다. 우리것을 점점 잃어가는 시대에 역사의식이 남 못지 않은 여러분이라면 일제시대와 분단시대의 한복판, 정의의 편에 서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오며 민족의 해방과 통일을 신념으로 살고 계시는 가장 우리나라다운 사람중 백기완의 통일이야기를 벗삼아 지난 세기의 역사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절로 느껴질 것이다.

요즈음 바보상자를 통해 오락프로나 드라마에만 열중하고, 호화스러운 집과 멋진 차와 푸짐한 밥상과 편안한 일상만을 바라보고, 일확천금이란 헷꿈을 꾸며 쾌락과 욕망만 쫓는 우리네 사람들, 한번 굴레를 깨어 새로운 눈으로 만물을 바라보자! 우리나라가 어떤나라가 되야 할지, 그속의 나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 자식,손자 녀석들에게 어떤 땅을 물려줘야 할지, 또 어떤 삶이 사람다운 삶인지 한번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난 이런 고민들이 무엇보다 원초적인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정직하고 근면하게 살아가려면 패배감 속에서 헤엄치기를 피할 수 없는 상실의 시대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 저항하며 올바르게 살기를 바라는 여러분이라면 이책은 여러분을 더욱 강하게 무장시켜줄 것이다.책의 끝자락에 나오는 노나메기 세상. 말 그대로 너도 나도 같이 일하고 같이 잘 살되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 되려면 통일의 날이 먼저 다가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통일의 날을 맞는 그날까지 무엇을 해야 할까? 적어도 한번 우리의 미래! 자식,손자들의 미래를 모두가 함께 고민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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