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통신문 시 쓰기 소동 - 2025년 개정 4학년 1학기 국어활동 교과서 수록 노란 잠수함 15
송미경 지음, 황K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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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삶의 변화를 주는 이벤트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비둘기초의 가정 통신문은 그 이벤트를 공포하는 공고문이다. 캠핑 가기, 놀이공원 가기, 가족 앞에서 장기자랑 하기. 이것들은 비둘기초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제시한 이벤트들이다. 학생들은 통신문을 핑계삼아 가족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재미있을 법한 아이디어에는 한계가 있는 법, 창작의 고통을 겪는 교장선생님은 그 고통을 다른 선생님들과 분담한다. 그 첫 번째 희생양은 핑크빛 열애설이 도는 땡땡이 선생님이다. 땡땡이 선생님은 한 달 후에 시 낭독회를 열 예정이니 시를 써보라고 권유하는 가정통신문을 내보낸다.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숙제 단연 1위는 글쓰기다. 아이들은 차라리 수학 문제를 풀고 말겠다며, 뭔가를 쓰게 하면 질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뒤로 내빼고 절레절레 젓곤 한다. 무언가를 쓰는 것은 사유를 전제로 한다. 아무 생각없이 흘려보낼 수 있는 일상을 곱씹어 어떤 일을 쓸지, 어떤 표현으로 적어낼지, 어디까지 솔직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고민까지라면 그나마 수월하겠다만, 손가락을 움직이는 중노동까지 해야한다. 쓰고 나서도 썩 만족스럽지 않다. 맞춤법이 틀리기도 한다. 무엇이 좋은 글인지는 모르지만, 그게 적어도 내 글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시는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가장 좋은 점은 짧아도 된다는 것이다. 의성어, 의태어를 써서 줄을 채워도 오히려 더 좋은 시가 될 수 있다. 맞춤법이 틀려도 시적 허용으로 넘어갈 수 있으며, 내용에 여백이 있어도 시니까 문제없다. 나만 쓰는 것도 아니다. 우리 가족도 쓰고, 심지어 선생님도 쓴다. 쓴 걸 서로 읽고,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 내 것을 누가 읽어주는 기쁨, 그 시간만큼은 내가 주목받고 주인공이 된다. 이렇게 한달간의 시 쓰기 가정통신문은 약간의 수고로움 필요로 하지만 그 수고로움 이상의 것을 비둘기초 가족들에게 남긴다. 이제 그들은 시를 쓰기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글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의 아쉬운 점이라면 땡땡이 선생님의 시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어쩌면 선생님들의 시 제출은 얼렁뚱땅 넘어가버렸는지도 모른다) 인물의 미스테리한 점만 살짝 맛보여주고는 흔적없이 사라지는 그 존재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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