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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다 읽고 창경궁을 걸었다
<대온실수리보고서>를 다 읽고 나서 바로 원서동과 창경궁을 다녀왔다. 봄을 재촉하는 비를 맞으며 깡통분식부터 빨래터까지 걸었다. 세탁소 등 골목마다 영두와 순신이 다녔을 곳들을 찾아보았다. 작가도 소설적 창작을 위해 이 거리를 백 번은 걷지 않았을까?
창경원의 서쪽인 원서동은 아직도 창덕궁 돌담벽에 기대어 건물들이 위태로이 서있었다. 작가는 낙원하숙으로 어디쯤을 생각했을까? 내 나름대로 한 곳을 찍긴 했다.
창덕궁으로 들어가 함양문을 거쳐 창경궁으로 넘어갔다. 일제강점기에 근대적 왕립도서관인 장서각이 있었던 자경전 터도 거쳤다. 돌아가니 이 소설의 주요 무대인 춘당지와 대온실이 있었다.
영두와 리사가 스케이트를 타던 창경원 춘당지와 그 앞의 대온실에서도 문자와 영두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대온실은 1909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백년이 넘도록 식물들을 돌보고 있었다.
춘당지에는 커다란 잉어들과 백여마리의 쌍쌍이 원앙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고양이들이 있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가 나를 움직이게 한 이유
왜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창경궁으로 뛰어갈만큼 이 소설에 이렇게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것일까? 무엇보다 작가의 글이 참 좋다. 힘주지 않은 문장이 좋다. 주변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인물의 심리상태를 그리는 표현이 뛰어났다. 울림이 큰 문장을 쓰면서도 전혀 잘난 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아웃사이더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글로서 드러난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의 주제
이 소설의 주제는 상처와 극복이다. 건축, 탐조, 식물, 벨에포크 시대, 잔류일본인 등 최근 가장 핫한 이야기들이 다 들어 있다. 내용으로는 크게 네 인물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영두, 문자, 산아, 후쿠다, 이들이 모두 소설에서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다. 이 이야기들을 쫓아가다보면 400페이지 넘는 소설이 쉽게 읽힌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의 장점: 살아있는 캐릭터
산아와 영두의 대화나 건축사무실 직원들간의 대화를 보면 유머, 재치, 공감 등이 들어있다. 실제 존재할 것 같은 캐릭터들로 느껴진다.
곤줄박이로 표현되는 제갈도희 같은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동궐관리단의 정과장도 내가 한번 마주친 것 같은 공문성애자 공무원 캐릭터이다. 산아도 엄마를 걱정하는 영민한 아이이다. 문자가 제일 알기 어려운 캐릭터가 아닐까?
<대온실 수리 보고서>의 장점: 고증을 거친 공간의 역사
역사와 공간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한 김금희 작가가 노력도 멋지다. 소설 뒤에 붙은 참고문헌만으로도 느껴진다. 더 읽어보고 싶은 책들도 보인다. 소설의 확장력이 놀랍다.
원서동이란 이름 자체도 창경원의 서쪽이다. 원서동에 틀림없이 창경원의 동물원과 식물원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아마도 일본인들 구역에 살았을 것이고 조선인들이 살았던 동네일 것이다.
작가 인터뷰에 보면 이미 재교가 나온 상태에서 알라딘 중고서적에서 우연히 만난 가회동성당 책을 보고 내용을 바꿨다고 한다. 중간에 증개축이 된 것을 모르고 20년이 지나서도 가회동성당이 그대로라고 썼었단다. 바로 고쳤다고 한다. 나도 등골이 서늘한데 작가는 오죽했을까.
작가에 대하여
김금희 작가는 1979년 생으로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랐고 인하대 국문과 96학번 천주교인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새에 비교한 묘사가 출중했다. 작가는 무슨 새냐고 물어보니 팽권이란다. 바다에도 살고 육지에도 산다. 소설가로서도 살고 생활인으로도 살고 있다. 바다에서 육지로 멋지게 스위치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뒤뚱거리며 뭔가 어설프단다.
항상 아웃사이더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본인도 아웃사이더라고 한다. 인천 출신의 힘이 있다. 주변부가 오히려 본질을 꽴뚫는 힘이다. 1980년 생으로 인천 송도고를 나온 김애란도 그렇다.
나의 어린 시절 창경원의 추억
서울에서 자란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 창경원에 대한 추억이 있다. 어린이날이면 창경원에 가서 케이블카와 대관람차 등을 타는 것이 우리 또래의 소원이었다. 회전목마도 있었고 줄에 매달려 돌아가는 그네와 비행기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동물원이었다. 얼룩말을 특히 좋아했다.
서울랜드가 과천에 생기면서 동물들이 이사가고 창경원은 어느 새 창경궁으로 새로 단장을 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했다. 일본인들이 조선왕조의 신성한 궁을 일부러 짓밟으려고 창경원으로 바꿨다는 그럴 듯한, 어쩌면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지금도 그런 얘기를 담고 있는 기사들이 있다.
대온실 소설을 읽으며 찾아보니 왕립식물원과 동물원에 경성부민들을 들어오게 만은 것은 순종의 뜻이었다. 대신들이 격렬하게 반대했으나 순종은 애민을 얘기하며 밀어붙였단다. 이 얘기도 좀 이상하긴 하다. 정말 격렬하게 반대했을까?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고 나서 향후 계획
작가의 다른 작품들인 소설 <경애의 마음>과 산문집 <식물적 낙관>도 읽어봐야겠고 강화를 거쳐 석모도도 다녀와야겠다. 읽고 싶은 작품의 제목에서도 작가가 느껴진다. 민머루해수욕장에서 영두, 산아, 문자의 마음을 헤아려봐야겠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 참고자료
팟캐스트로 이 소설에 대한 리뷰를 듣고 싶어서 찾아봤으나 없었다. 팟캐스트가 문제일까 아니면 출판시장의 문제일까. 그 망망대해인 유튜브에서는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서평과 김금희 작가의 인터뷰가 있다. 둘 다 매우 좋긴 한데 이동진 평론가는 IPTV인 BTV 채널이고 김금희 작가 인터뷰는 책이 나온 창비 채널이다. 리뷰를 올리게 된 동기가 되었다.
재조선 일본인에 관심이 많아 책들을 몇 권 갖고 있다. <경성의 브로커들>, <조선을 떠난 일본인들>, <경성의 주택지> 등이다. 잔류일본인에 대한 책은 이번에 찾아보니 없더라. 그래서 작가도 논문을 참고했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