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시작시인선 47
박진성 지음 / 천년의시작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스물 여섯, 영혼의 절규
박진성 시집 '목숨' (천년의시작, 2005) 출간

박종서(lovethus) 기자
 
스물여섯, 영혼의 절규
 
우울증이 화두가 되는 시대, 우리는 문득 나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젊은 여배우의 죽음으로 가시화된 '우울증', 그리고 여럿 정신 병리학적 담론들이 회자되고 있는 요즈음, 그러한 병을 스스로 앓으면서 처절하게 시작 활동을 해 오고 있는 젊은 시인의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목숨’(천년의시작,2005)은 2001년 ‘현대시’로 등단한 박진성 시인(26)의 첫 시집이다. ‘병과 같이 9년을 지낸’(‘나는 아버지보다 늙었다’) 처절한 은유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시집의 키워드는 무엇보다도 ‘병원’으로 상징되는 고통스런 현실 세계이다.
 
시집은 처음부터 ‘나는 시인이 될거야’(‘대숲으로 가다’)라는 시적 화자의 강박적 진술을 보여준다. 박진성의 시집에서 ‘병’과 ‘시’는 스물여섯, 비극적 청춘의 버팀목처럼 보인다.
 

창문을 닫지 말아요 나는 금강으로 가야해요,
대숲의 바람소리 병원에 부려놓으면 의사는
나보다 작아졌다 작아져서 흰 알약이 되었다 어머니,
나는 詩人이 되야 해요, 책갈피를 견디지 못한 종이가
침대 밑으로 쏟아지면 어머니는 종이들을 내 몸에
덮어주었다 네가 입을 옷이란다
또 밤이 오면 바람 부는 대숲으로 갔다
날카롭고 뾰족한 대나무는 스스로 칼이 되고 있었다
- ‘대숲으로 가다’ 부분
 

시집 곳곳에서 출몰하는 ‘병’의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강력한 ‘삶의 의욕’을 환기시킨다. 병을 앓고 있는 시인의 감각이 자주 가 닿는 곳은 ‘어머니의 여성을 핥고 있는 어린 개의 몸부림’(폐경기), ‘노을에 녹녹하게 달궈진 귤 열매들의 수런거림’(귤)과 같은 삶의 현장이다. 문학평론가 장석주의 지적처럼 ‘박진성의 시들은 호흡법과 리듬, 언어의 선택, 진정성, 그리고 심미적 깊이에서 뛰어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병을 앓고 있는 시인의 목소리는 ‘애상과 비애로 시적 관능을 남발하지 않는다.
 
오랜 ‘앓음’을 통해 박진성 시인이 획득하고 있는 것은 ‘아라리’로 요약될 수 있는 우리 삶의 고단한 신명이다. 문학평론가 박수연은 “아라리가 났네”라고 노래 불렸던 여음구의 아라리는 단순한 음운이 아니라 생명의 실체로 반복된다고 평한다.
 

아라리가 난거랑께 의사 냥반, 까운에 환장허겄다고 달라붙는 햇살이 아라리가 나서 꽃잎을 흔들자뉴 오메 發病 원인은 불안 강박 우울 공황 발작, 이런 게 아니라 아라리가 나서 그렇탕께 왜 심전도는 찍자 그러는규 술판서 언 눔이 아리랑을 불러 재끼는디 아라리가 헉 하고 피를 토해내능규 복분자가 요강을 뒤집어엎는 것 맹기루 아라리가 내 몸도 이렇게 뒤집어서리 환장허겄다고 나도 아라아리가 나아안네 부르고 있는디 내 몸이 꽃이파리마냥 바르르 떨고 있는디 그 냥반들이 응급실에다 나를 쳐 넣은규 숨이야 아라리가 쉬겄지 심장이야 지 혼자 팔딱팔딱 하는 거구 긍께 의사 냥반 이 담에 병원 와서 불안하고 우울하담서 뒤집어 자빠진 사람 있으믄 아리랑 한 번 불러주슈 아라리 땜시 잠시 잠깐 그랑깅께, 저 꼰잎에서 주르륵 미끄러지는 아라리 몸 좀 보소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나믄 아라리 한번 재껴부리믄 돼쥬, 나 갈라유! - 「아라리가 났네」전문
 
시집 ‘목숨’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테오에게’ 연작인데, 이는 ‘광기의 화가’ 반 고흐의 목소리를 빌려서 시인 자신의 예술혼을 뿜어내는 격렬함으로 나타난다.
 

죽음으로도 별에 닿을 수 없다면
내 영혼에 구멍을 내어주마
구멍 틈새로 별빛이 빛날 테고 너는 놀라서
이곳으로 달려오겠지만,
침대 밑에서 자고 싶은 자 침대 밑에서
자게 하라 어느 날 내가 이곳에서 벌레처럼
침대 밑을 기어다니더라도 그것은, 테오야
낮은 곳을 그리기 위해 내 영혼을 대어보는 거란다

- ‘발작이후, 테오에게’ 부분
 
‘병을 앓고 있음’은 역설적으로 ‘살아야겠음’의 의지를 확인시켜준다. 시집 ‘목숨’을 통해서 우리는 한 젊은 시인의 치열한 자기 모색과 예술혼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박진성의 나무들로부터 청춘의 발자국을 배웠다’는 송재학 시인의 글처럼, 시집 ‘목숨’은 젊은 예술가의 ‘핏빛’ 영혼이 얼마나 선명하게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시인이 시집의 자서에서 말하고 있듯이 병과 함께 '共病'하는 섬세한 모습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시대 우울한 자화상에 조용한 파문으로 번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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