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박물관 소식
- 우리 밀 어린싹
만일 지금 예수가 오신다면
십자가가 아니라 똥짐을 지실 것이라는
권정생 선생의 글을 읽었다
점심 먹으러 갈 때마다 지나다니는 농업박물관
앞뜰에는 원두막에 물레방아까지 돌아간다
원두막 아래 채 다섯 평도 안 되는 밭에
무언가 심어져 있어서 파랬다
우리 밀, 원산지 : 소아시아 이란 파키스탄이라고 쓴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농업박물관 앞뜰
나는 쪼그리고 앉아 우리 밀 어린싹을
하염없이 바라다보았다
농업박물관에 전시된 우리 밀
우리 밀, 내가 지나온 시절
똥짐 지던 그 시절이
미래가 되고 말았다
우리 밀, 아 오래 된 미래
나는 울었다
- 시집 『마음의 오지』/문학동네
*농업박문관이라니. 몇 편의 연작시를 읽고 나서 나는 무슨 서글픔으로 대평리 너른 들판에서 허수아비보다 너 느린 동작으로 벼를 베던 할아버지의 등을 본다. 과거는, 지나간 미래, 현실의 논리가 배제하면, 그저, 배제당해야만 하는 것인가. 제 스스로 광합성을 하고 제 스스로 빛깔을 내지 못하고, 박물관 진열등 아래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런건가. 흙을 밟은 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나도 그 '배제'의 대열에 동참한 것이다. 죄 짓지 않아도 죄스러운 일이 너무 많다. 문제의 시작은, '환기' 아니겠는가. 아, 시 속을 우려내고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우리 밀 어린 싹'의 발그레한 눈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