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길 서러워라 - 단비뉴스의 대한민국 노인보고서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4
제정임 엮음 / 오월의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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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하나.


우리층 사무실들을 청소해주시는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우리 사무실에 오셨다. 대걸레를 들고 오신 할머니는 또 다시 조심스레 "'미안하지만' 사무실 청소 좀 해도 되겠냐"고 물으셨다.

나와 직원들은 당연하게도 그리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당연히 된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사무실로 들어와 땀을 뻘뻘 흘리시며 대걸레질을 하셨고 그 와중에도 연신 미안하다고 하셨다.

"사무실이 10개라서 새벽에 혼자 다 청소를 못해요."

할머니의 말은 가슴을 쳤다. 팥죽땀을 흘리는 할머니 앞에서 또 한번 송구했다. 사무실을 나서는 할머니께 비타민 드링크 한 병을 드렸다. 사양하시다가, 받으셨다.

내가 저분께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도 되는 사람인가, 새삼 부끄러웠다.


이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보면서 울컥하거나 가슴이 찢어지는 책이 많지는 않은데 [황혼길 서러워라]는 내 가슴을 후벼파다 못해 눈물이 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운영하는 '단비뉴스' 팀 기자들이 취재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황혼길'에 접어든 노인 분들의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담았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가난, 치매, 고령 노동, 황혼 육아, 고독, 성 문제 등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어떤 노인은 잠들 때마다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고, 또 어떤 노인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물었더니 '평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게 OECD 가입국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대한민국 노인의 현실이다.


1장에서는 농촌 노인의 현실을 다룬다. 평생 뼈빠지게 일했는데 남는 것도 없고, 자식들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빈곤층으로 전락해 있다. 이들에게 삶의 낙이라는 것은 전혀 없다.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이다.


2장에서는 치매에 시달리는 노인들과 가족들의 모습이 나온다. 치매는 흔히 '노망'이라고 불렸는데 요즘에는 젊은이들에게도 나타날 정도로 흔한 질병이 됐다. 국가가 나서서 관리해줘야 하지만 뒷짐을 지고 있다.


3장에서는 고령 노동을 그린다. 늙어서 쉬고 싶지만 '단지 입에 풀칠'(수준 높은 삶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하기 위해 노동을 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비참하다.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끕끕하고 눅눅한 지하실 공간에서 눈치를 보면서 밥을 먹는다. 그마저도 불평을 하면 1년마다 갱신하는 계약이 잘릴까봐 아무 말도 못한다.


4장에서는 손주 키우다 골병드는 황혼육아를, 5장에서는 죽음보다 두려운 고독, 고독사를 다뤘고, 6장에서는 박카스 아줌마로 대표되는 '노인의 성'을 다뤘다.


이런 중요한 문제들을 우리나라 주요 언론들은 외면하고 있다. 누구나 다 늙는다. 젊음이 투쟁해서 얻은 것이 아니듯 늙음도 형벌로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현실은 내일은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다.


읽는 내내 가슴이 너무 아팠다. '평생' 힘들었다는, 앞으로 죽는 날까지도 힘들 것이라는 노인. 나 죽으면 누가 울어줄까 걱정하면서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노인. '기응환'이라는 만병통치약 때문에 황혼육아 과정에서 자식(며느리)들과 마찰을 빚는다는 노인 등.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인 것이다.


부모님이 있는 사람과 미래에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될 사람 모두에게, 사실은 대한민국 모두에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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