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의 1/4 - 2004 제2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한수영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어제 자기 전에 슬쩍 붙잡았다가 역시나 손을 놓지 못해 주욱 끝까지 읽은 책, 공허의 1/4.
오늘의 작가상 수상이라기에 내심 기대했다. 다른 사람들은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글 어쩌고 했지만 나는 왠지 글에서 신인다운 무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는 방식 자체는 그닥 새로운 느낌이 들지 않았지만, 내용에서... 굉장히 독특한. 박하라기엔 박하가 너무 상큼하고. 계피를 씹는 느낌 같이.
 
룹알할리 사막, 모래와 작렬하는 태양만이 존재하는 그 곳은 화자가 그리워하고 가고파하는 곳이다. 화자는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인데 병에 의해 거대해진 체구는 그녀가 세상과 단절하게끔 만든다. 아파트 관리실에 앉아 아파트 거주인들을 관찰하나 그녀의 관심을 끌게 해주는 것은 그닥 없다. 그녀는 오로지 룹알할리 사막으로 가는 날을 기다리는 것을 낙으로 삼아 살아간다. 김 선생의 과학 학원에서 포르말린 병 속 해부된 개구리, 송사리, 오징어를 보며 영매 놀이를 하고 돋보기를 통해 모아진 햇빛으로 몸을 쬐는 취미를 가진 그녀가 좋아하는 순간은, 스피커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가 아파트로 퍼져나갈 때이다. '주민 여러분들께 알립니다. 오늘부로 수도 점검이 있사오니...' 사람들과의 소통을 회피하는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는 순간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왠지 그녀는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사회에 섞여들어가고파하는, 그러나 자신의 몸때문에 이를 포기하다가 어느 새 굳게 자신은 사회를 거부하고 있다고 믿고있는...
 
그런 그녀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그녀의 또다른 형태인, 두 사람이다. 남자와 아이.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이 두 인물은 그녀와 비슷하다. 같은 곳을 꿈꾸는 세 사람. 룹알할리, 사막, 안드로메다. 셋은 모두 같은 곳이다. 사회에서 한 걸음 떨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꿈꾸는 마음 속의 한 장소. 그 곳에 대한 넘쳐나는 그리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
 
마지막에, 여자는 그 곳으로 간다. 비행기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다 읽고 나니 공연히 뭔가 가라앉는 느낌이다. 자꾸만 주문을 외는 그녀가 떠오른다. 쓸려가버려라 쓸려가벼려라 쓸려가버려라... 나는 룹알할리로 간다, 간다, 룹알할리로 간다...
행복해져라는 주문을 외우는 편이 나았을 텐데.
 
 
너무도 독특한 사람들, 그네들의 삶이 부러울 리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당연하지 않은가. 주인공인 그녀보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끌지 못한 김 선생, 관리인 소장, 아파트 거주인과 닮은, 평범한 사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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