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책제목이 상당히 에로틱하다.
내게 도발적인 의미로 다가온 이 책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는 폭넓은 장르의 책을 동시에 읽으면서 서로 다른 성격의 지식과 정보를 통섭하는 고도의 정보분석 작업을 통해 머리의 회전력을 지식력으로 바꾸는 어렵고 힘든 작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수십권 읽을때와 수백권 읽을때의 차이는 존재한다.
수십권 읽을 적에는 책 여백에 메모도 하고 서평도 쓰고 간간이 메모기록장에 책을 읽은 흔적을 내며 자랑하기 일쑤였지만, 수백권 상태로 진입해서는 언제 그런 낙서를 했는지 도저히 기억해 낼수도 유추해낼수도 없는 오리무중의 상황. 위로가 되는 상황이라면 밑빠진 독마냥 책을 읽다보면 그래도 언젠가는 조금은 차 있을 지식의 양에 만족해 있을 자신을 상상해보는 것이었다.

처음 이 책의 서문을 접했을 때, 열권을 동시에 읽어야 하는 당위성에 썩 개운치 못한 씁쓸함이 느껴졌다. 저자의 업무와 지위 특성상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여러 장르에 걸친 교양 지식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읽음에 정독과 다독의 적절한 크로스 숙독이야말로 독서의 스킬이 아닐까란 생각을 늘 갖고 있는 바지만, 동시에 여러 권을 읽어내는 것이 창조적 책읽기라 정의한 것은 획일적이고 단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책을 펼치고선 필요한 정보만 쑥쑥 뽑아내는 것도 책을 꽤 읽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게 보아서는 요약집을 보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무엇이랴 생각이 들었다. 완독을 하지 못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완독의 당위성을 휴지조각 취급하는 것에 울컥 별점 한개 미만이라 혹평하고 싶은 욕지기를 겨우 참아낸다.

이쯤해서 다시 생각해보자. 난 왜 이 책을 읽고 귀중한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것일까.
그것은 저자의 목차 꼭지중에서 가슴에 와닿은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세 배 더 많은 수입을 위해 세 배 더 많은 책을 볼 것.
돈을 주고라도 책 읽을 시간을 살 것.
일벌레가 되어 자기 시간을 남을 위해 쓰지 말 것.
수준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수준 높은 책을 읽을 것.
생각과 독서의 대가들은 메모를 하지 않는다. 다만 수다를 열심히 떤다.
책에 관한 비평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편견을 버리고 흑백 중간지점에서 저자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습관을 하자.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게도 장르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책을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깊이있는 독서 체험의 목마름에 관련 책 위주로, 저자 네트워크 방식으로 책을 읽다가 기나긴 슬럼프를 만나면서 오랫동안 책을 보지 못했다.
이 책의 저자가 하는 이야기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름 도움되는 내용도 있어 다행스럽다. 읽는 스타일이 매번 달라진다 하여도, 지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펙터클한 독서빅뱅의 체험을 하리라 결심한다. 한가지 독특한 개성이 또다른 개성과 만나 절묘한 퓨전의 시대를 연출하는 요즘, 지식의 종과 횡이 만나면 어떤 효과를 일으킬지 흥미진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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