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침묵 - 제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이선영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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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따갑도록 듣던 피타고라스의 정리 이론, 무수히 많은 공식 중 하나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간과한 것 중의 하나인 소재가 재밌고 박진감 넘치는 추리소설로 읽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에 읽을 적에는 여느 모든 소설이 그러하듯 생소한 이름과 낯선 도화지에 머리속을 달달 볶아야 그럴싸한 상상의 날개가 펼쳐지는 것과는 달리,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는 참혹한 복선에서 부담없이 출발하는 명화의 날개가 만족스러웠다. 특히 긴장감을 조성하는 단문의 열개가 끅끅거리는 비명이 새겨나오는 신음소리를 막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묘한 스릴감이 기분좋은 독서의 출발을 알리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복잡한 설날 명절, 하필이면 이때 이 책을 읽었을 게 뭐람'

조금씩 읽다가 내려놓고 다시 들기를 여러 번. 차라리 골방에 몰래 숨어 내리 이 책을 빨리 읽어보기를 소원할만큼 전체적 줄거리 어느 한자락도 서툴게 읽어볼 여유가 없었다.
소설 속 당당한 조연의 몫을 커버하고도 남을 아리스톤에게 진한 연민을 품어보았다.

사랑하는 형, 디오도로스의 죽음 속 어두운 장막을 파헤친 그가 아내 마야의 무덤가를 지키며 죽음으로 끝나는 한편의 로맨스는 마치 지식과 권력이 만나면 시궁창처럼 부패하고 타락할 것임을 죽으면서 경고했던 현자의 스승 페레키네스만큼이나 안타까운 이 시대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을 낀 두 변 길이의 제곱의 합이 빗변 길이의 제곱과 일치한다는 공식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걸어간 제자들과 현자와의 찌릿한 사투는 오늘날에도 지식은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 되어 온 것과 진배 다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진정한 지식이란 무엇인가?' 
붉게 타오르는 히마티온을 둘러쓴 히파소스가 어두운 곳에서 미소를 지으며 반문하는 것 같다.

얇지 않은 책인데도 숨가삐 읽어 아쉬운 마음에 두번, 세번 읽던 차에 왠지 가슴 언저리가 묵직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의미모를 몇 단어, 그리고 복합동사의 쓰임새가 많아서 그런 것일까.
은근히 띄워쓰기가 신경이 쓰여 읽는 호흡이 족족 막힌다. 페이지 51쪽 <처분하여주십시오>, 페이지 83쪽 <의문 나는 점이>, 페이지 261쪽 <털어놓았다>, 페이지 279쪽 <주저앉아버렸다>, 72쪽 코안. 코안이 뭘까. 사전검색에도 나오지 않는다. 히잡이나 부르카처럼 얼굴이나 몸을 가리는 스카프 같은 것일까? 책 전반부에 현자의 아내 테이노를 일컬을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 주석을 달았으면 좋으련만. 페이지 83쪽 <신선한 도량..> 도량은 불도를 수행하는 절이나 중이 모인 곳을 지칭하는 단어다. 단어의 쓰임새, 띄워쓰기가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형식적인 조형미 보다 불편했던 것은 전체적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친절한 작가의 해설적 설명이 등장인물의 개성적인 연기로 잇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참주 킬론과 니코스의 죽음, 아리스톤의 정처없는 방황 등 어쩌면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 속 인물이기에 아쉬운 마무리로 끝을 냈어야 하는 갈증이 이 책을 몇 번이고 되돌아보게 하지 않았는지..좀더 탄탄한 결말로 유도했더라면 하는 한줄기 바램을 가지며 즐거운 독서의 시간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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