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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 - 세상의 변화를 읽는 디테일 코드
팔란티리 2020 지음 / 웅진윙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한권의 책에서 현재에서 멀지 않은, 가까운 미래를 살짝 엿보았다.
먼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미래학자들이나 하는 일인줄 알았는데, 사소한 현재에서 미래를 끌어당기는 일이 이렇게 흥미진진 할 줄은 미처 몰랐다. 이 책을 펴낸 저자는 NHN의 팔란티리2020 연구진들이다. 늘 그렇듯, 책을 읽다보면 저자와 은연중에 소통하는 맛을 느끼는데, 이 책은 장점과 단점을 지녔다. 풍부한 인문학적 고찰과 통찰력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반추할수 있는 자성과 상상을 이끌어가는 별난 맛이 이 책의 장점이고 단점은 질문에서 답을 유추해가는 과정에서 예상할수 있는 결과에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이 책은 왠지 외서를 번역한 듯한 딱딱한 번역체 느낌이 감돈다. 여러 명이 합작한 다작이 일목요연한 흐름을 타고 시종일관 작고 사소한 힘있는 일상을 찾으러 돌아다닌다. 어느새 나는 작은 우주선에 타고 이들의 움직임에 조용히 합류하기 시작했다.
나는 몇 개인가? /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이냐? / 네가 아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 클릭의 경제학 / 나는 논다. 고로 존재한다 / 파워 게임의 승자 / 앤디 워홀. 모두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목차가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흥미롭게 이끌어준다.
이 중 나의 관심을 끈 것은 1장, 3장, 4장, 5장이다.
1장에서 설명하는 요지는 개인의 정체성이 인터넷이란 가상 세계를 만났을 때 자기 복제로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적 관계에서 부여되는 아이덴터티는 다양한 역할 모델을 요구한다. 사회적 상호 작용을 촉발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진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보급이 짧고 빈번한 '수다'로 이어지면서 스몰토크와 명품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는데, 부모님과 독립하여 살고 있는 내 경우만 보더라도 부모님과 하루에 1,2분 정도의 짧고 간단한 대화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그런 탓이기도 했다. 1장에서 내가 얻은 유익한 점은 "왜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일까?"란 질문이었다.
책에 따르면, "동양인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자아의 개념이 덜 독립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주의에 기반을 두는 서양 문화에서는 자아가 독립적 개인을 지칭하는 주체인 반면 집단주의에 기반을 두는 동양 문화에서는 자아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의해 다른 사람들과 서로 연결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결정된다"(34쪽)
일상적인 소소한 대화를 스몰토크라고 할때 일상적인 수다 자체가 관계를 형성하는 요즘에 있어서 스몰토크야말로 세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리라는 점에 귀추를 주목해본다.
3장에서는 정보 채널에 어떻게 접근하는가, 전문적 지식과 대중적 지식의 차이점, 지식 서비스와 자료 서비스의 차이점, 지식의 유통과 콘텐츠의 사회적 보상 문제에 대해서 심도있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인터넷 검색에 심심찮게 몇번의 실패를 겪고 그럴듯한 시간을 투자하고 나서야 자료에 접근하는 것이 일상의 생활인데, 이 책에서는 바야흐로 검색어의 생성 논리를 체득하고 있어야 인터넷 가상 공간의 어엿한 시민이 될수 있다는 점을 반추하고 있었다.
네이버에서 운영하는 지식 IN 서비스를 예로 들면서 지식 공유 시스템을 갖추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사회 심리학적 이론을 '링겔만 효과'라 불리우는 사회적 태만 현상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집단 구성원간의 결속력을 이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으로 개인의 기여도가 사회적 인정을 받을 경우와 작업에 대한 내적 동기를 느낄 때가 크다란 점은 내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물리적 보상이라는 외부적 요인이 지나칠 경우에 도리어 자발적인 지식 콘텐츠를 생산하는 협력관계를 망칠 수 있다는 사회 심리학자 마크 레퍼의 실험 역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고 내게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4장 클릭의 경제학에서는 2020년 미래생활자의 삶을 상상하는 다음 이야기를 통해 나름의 재미있는 한 토막을 상상해 보았다.
"쇼핑몰 화면에는 원피스를 산 사람들이 그 옷을 입고 찍은 동영상 UCC들로 가득하다. 원피스 코디법을 알려주는 UCC들도 많다. 채린이 구매버튼을 누르자 이번에는 그 원피스를 중고 원피스 쇼핑몰에 등록하겠느냐는 화면이 나온다. 원피스를 구매하자마자 동시에 판매자가 되는 것이다" (190쪽)
구매자이자 동시에 판매자가 된다는 측면인데, 물품을 이용한 소비자가 다양한 부가 가치를 생산할 수도 있고, 정보를 되팔수도 있으며, 구매 의욕을 자극하는 쇼핑 메카니즘이 될수 있는 측면이 매우 흥미로웠다. 생산품이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고 최종 구매자와 중간 마진을 챙길수 있는 네트워크 마케팅처럼 생활 전반의 모든 라이프 스타일을 UCC로 담을 수 있는 인터넷 가상 공간은 화려한 전자 상거래을 예고하고 있었다. 인터뷰에서도 주지했듯이 미디어 소비 스타일을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UCC처럼 콘텐츠를 제작하고 확보할 수 있는 플랫폼 확보가 제일 큰 관건으로 보여진다. 온라인 마케팅이든, 유비쿼터스 환경이든지간에 말이다.
5장 게임과 현실을 인터페이싱하다.
"이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만 해도 지루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202쪽)
내겐 그야말로 딱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율성과 유능성,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를 갖는다"고 한다.
현실적인 제약과는 달리 게임에서는 현실보다 더 나은 자율성을 경험하게 되고, 온라인에서의 잦은 만남이 관계성을 부추긴다.
15세의 중학생이라 하더라도 게임에서는 최고의 능력을 지닌 전문가 역할을 수행하는 리더가 될수 있다.
책에서는 게임의 몰입이 현실과 단절이라는 게임 중독을 경계해야 하는 투로 결론을 이끌어 내지만, 게임에 몰입하면서 느낄수 있는 강력한 즐거움을 게임의 형태로 커뮤니티를 구현한다면 얼마나 재밌고 신날까^^?
편지는 구시대의 전유물이 된지 오래이고, 전화 통화보다 간단한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이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 말을 하듯이 휴대폰의 조그만 자판을 귀신같이 눌러대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고 그런 이들이 주고 받는 사소한 수다가 친밀감을 표시하는 인간관계론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 다가올 미래의 일부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고 사소해서 누구나 크게 떠들썩하게 여기지 않았던 그런 것들이 씨줄이 되고 낱줄이 되어 우리의 세상을 만들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동서양 문화에 따른 자아의 상이성과 민족성에 관한 새로운 호기심이 트였고 '링겔만 효과'라 불리우는 사회적 심리현상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UCC를 이용한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어졌고 게임의 순기능을 발휘해서 자발적인 학습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작은 신세계. 이젠 나의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를 꿈꾸어 보련다.